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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예수 안에 있음을 감사하라 (빌3:1~9)

761호 · 2014-09-26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하고 질문을 하면, 몇%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답할까요?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조사 분석한 결과 10점 만점에 5.35점을 얻어 36개국 중 27위입니다. 국민 대다수가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까요? 문화 혜택도 누릴 만큼 누리고, 살만큼 사는데요. 이는 행복이란 결코 육적인 것을 채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적인 것이 채워지면 편리해질 뿐, 그것이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 그것은 예수 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가끔 우리 성도 중에 정말 남들이 보기에는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그리 건강치도 않은데 행복해 보이는 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행복의 조건이 하나도 구비되지 않았는데 얼굴이 환하고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께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 분 말씀이 “그냥 행복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냥 행복하다’는 이 말이 정답입니다. 적어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게는, 왜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냥 행복하다는 말이 정답입니다. 왜인지 압니까?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보면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죽는 것도 복될진대, 예수 안에서 사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전도서에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다고 했지요? 그냥 살아 있는 것도 복인데, 예수 안에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기쁜 일입니까? 그러니 당연히 그냥 행복할 수밖에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모릅니다. 복이 복인 줄 모릅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불행하다고 우거지 밥상 얼굴을 하고 사는 겁니다. 여러분,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잊어버리면 불평하고 불행타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사51:1).

그럼 우리가 있었던 우묵한 구덩이가 어떤 곳인지 볼까요?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1~12).

무슨 말씀인가 하면, 과거의 여러분은 하나님의 관심 밖에 버리운 자였고, 하나님의 은혜가 닿지 않는 이방인이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곧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 구원은 9절 말씀처럼 우리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힘쓰고 애쓰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선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감사해야 하고 당연히 눈물이 나도록 행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해야 할 이유이며, 이것이 건강하지 않아도, 조금 힘들더라도, 어려움이 눈앞에 있어도 그냥 행복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예수 안에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요 축복임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유익한 것들을 다 해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왜요? 그것이 행여 자기로 하여금 예수 밖으로 나가게 할까 해서입니다. 그것을 좇아 하나님 밖으로 나갈까봐서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8~9).

바울은 유대교에서 자신의 외적인 것들을 자랑거리 삼았습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6).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 이전의 자랑거리가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오직 예수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인이요 최고의 스승인 가말리엘 스승 밑에서 배운 바리새파라는 것들이 예수 안에 사는 행복의 걸림돌이라고 여겨 배설물 버리듯 한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부귀나 지식이 당신을 자꾸 예수 밖으로 유혹합니까? 바울처럼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솔로몬처럼, 사울처럼, 발람처럼 그것을 쫓아 하나님 밖으로 나가면 버림을 받은 자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버림을 받았습니까?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나와 왕을 세워달라고 조릅니다. 이유인즉 사무엘의 아들이 사무엘 같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무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삼상8:7~8).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밀어낸 것입니다. 그들은 선민의 특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계기만 있으면 하나님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세운 왕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그를 위해 고역을 감당했으며 마침내는 왕으로 인하여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이리 대하냐며 하나님께 자주 대들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만으로 축복이요 행복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여러분, 하나님 안에 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특별은총입니다. 아무나 그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만이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의 말씀을 우리가 넉넉히 이룰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 행복을 안다면, 이것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면,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든 사랑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 관용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핍박을 받고, 모함을 받고, 더는 순교의 길을 묵묵히 간 것은 바로 예수 안에 사는 기쁨, 예수 안에 있는 행복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예수 안에 사는 것만으로 감사한 당신은 분명히 “네”라고 답할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예수 안에서 죽는 자는 최고의 복된 자입니다. 할렐루야!

복이 복인 줄 알아야

복이 된다

생각하면 (think)

감사할 수 있다(th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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