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세대
‘3포 세대’라는 말, 들어보셨는지요?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다고 해서 요즘 20, 30대를 가리켜 ‘3포 세대’라고 부릅니다. 여덟 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십 대가 되면 결혼하고 애 낳는 것이 옛날엔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취업하는 것부터가 전쟁인 젊은 세대들에겐 돈이 들어가는 연애와 결혼, 그리고 육아는 포기의 대상이 되었지요.
어른들 보기엔 그저 젊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가능할 것 같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 행복해’가 아니라 ‘나 불행해’일 겁니다. 그런데 9월 8일 추석날,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평화통일 기도성회 때 예배를 드리다가 놀랍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3포 세대’가 아니라 세 가지 복을 받은 ‘3복 세대’구나.
그것이 어떤 복이냐고요? 첫 번째는 전쟁을 겪지 않은 복입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일제시대와 6·25를 모두 겪으셨습니다. 가끔 외할머니는 일본말로 노래를 부르시는데 다 일제시대 때 배운 노래지요. 우리 땅에서 우리말이 금지되던 시대를 사셨고, 해방 이후엔 기뻐할 새도 없이 6·25전쟁으로 가족을 잃으셨습니다. 150cm도 안 되는 작은 키로 그 잔인한 역사를 살아내셨다는 게 저는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전쟁을 겪지 않은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두 번째는 전쟁이 남긴 배고픔을 겪지 않은 복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광복 후에, 어머니는 6·25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나셨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배고프던 때였고, 여가생활이라던가 자기계발이라는 말은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요. 오직 먹고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그때. 우리가 아무리 힘들다, 돈 없다 해도 그때만 할까요?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희 엄마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정말 훌륭한 인재가 되었을 텐데, 하고요. 우리는 부모님 시대보다 훨씬 풍요롭고 편안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복입니다. 우리는 교회 가고 싶을 때 교회갈 수 있고,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할 수 있고, 찬양하고 싶을 때 찬양할 수 있지요. 때론 직장 상사가 교회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친구에게 유별나게 예수 믿는다고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핍박은 여기까지 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요.
하나님은 우리 젊은 세대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조부모님 세대보다, 부모님 세대보다, 더 나아가 북한보다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거저 받은 복이지요. 하나님이 그 큰 복을 주신 것은 남들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복을 거저 받은 우리가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평화통일을 위해서 말이지요.
9월 8일, 그날 저는 제가 받은 복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평화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조상에게 제사드릴 때, 시청광장에 모여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의 제사를 드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은 그날의 우리를 한 명 한 명 기억하시고, 속히 평화통일을 이루실 것이며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 정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신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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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캠브리지 의대를 졸업하고 1953년 아프리카 콩고 선교사로 자원한 헬렌 로즈비어의 간증입니다.
헬렌이 선교를 하던 1964년 콩고는 내전 유혈 사태에 빠졌고 헬렌도 체포 되어 무려 다섯 달 동안 인정사정없는 폭행과 여자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성폭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24명의 선교사 중 4명이 반군에 의해 살해되고 헬렌도 총살위기에 처했을 때
“너는 그래도 나를 사랑하느냐? 너는 이 순간에도 나를 믿느냐?”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만 죽음에 문턱에선 그녀는 “아니요” 라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결국 감사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너를 믿고 있다’는 주님의 신뢰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그녀는 훗날 ‘이런 무서운 일을 당했기에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사역 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은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 주셨어요. 그것은 바로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과 내가 주님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은혜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는 말씀처럼!
“나는 고통이나 아픔이 있을 때마다 시간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사랑을 통해 치유 받았다.” 이것은 사지가 없는 닉 부이치치의 고백입니다.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조개는 아름답고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뭘까요?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나의 믿음과 사랑과 감사를 고백 할 수 있는 은혜와 영적 성숙함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