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수1:10~18)
우리 어머니 팔순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 팔순잔치를 앞두고 우리 칠남매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형제가 많다보니 아롱이다롱이가 있습디다. 어떤 자식은 호텔도 알아보고 이리저리 연락도 하는 자식이 있는 반면, ‘뭐 그렇게 수선을 떠나? 칠순도 해드렸는데.’ 하는 자식도 있더란 말입니다.
제가 30년 동안 목회하면서 보니까 무슨 일에든 세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디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자도 있고, 자기도 참여하지 않고, 남도 참여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훼방자가 있더란 말입니다.
여호수아 1장 10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지휘관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진영으로 가서 백성들에게 각자의 양식을 준비하라고 해라. 이제부터 3일 안에 여기에서 요단강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 차지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너희 아내들과 너희 어린아이들과 너희 가축들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강 건너편 땅에 머물러 있고,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한 너희 형제들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신 것처럼 너희 형제들에게도 안식을 주실 때까지,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차지할 때까지 너희가 도와야 한다. 그 후에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강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으로 돌아가 너희 땅을 상속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요단 동편 땅을 분배 받았으니 ‘내 일은 끝났다’ 하고 뒷짐 지고 있지 말고, 다른 형제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안식을 얻을 때까지 함께 나가 싸우고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랬더니 모든 자들이 여호수아의 말대로 다른 지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것뿐이 아니라 오히려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힘내라고 격려까지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 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수1:16~18).
전쟁에 승리하고 여호수아는 그들을 축복합니다.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기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편 서편에서 그 형제 중에서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일러 가로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 금, 동, 철과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찌니라”(수22:7~8).
사사기 12장에는 이와 반대의 무리가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로서, 할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특별한 축복(창48:22)을 받은 사람입니다. 야곱은 형인 므낫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으로 에브라임을 축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과 정착생활에서 특혜와 특권을 누렸고,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못된 습성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가까운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이 사사가 되었을 때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이기자 시비를 걸었습니다. ‘왜 우리를 그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의 두 방백을 붙잡은 공을 칭찬하며 스스로 낮아지자 화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사사가 되어 전쟁에 승리하고 나자 똑같은 이유로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입다는 분노했고, 군대를 동원해 에브라임 지파를 닥치는 대로 학살했습니다(삿12). 기드온은 타협적 해결로 무마하였으나 입다는 분개하여 결국 전투를 벌인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마나 참전했던 기드온 당시에 비해 입다의 경우 추호의 조력도 없이 트집만 잡는 에브라임의 처사가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투에서 에브라임은 42,000명의 전사자를 남기는 참담한 패배를 맛보기 됩니다.
이런 경우도 교회 안에서 자주 봅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처럼 적극적으로 돕는 자가 있는가 하면, 에브라임 지파처럼 괜히 생트집이나 잡고, 생색이나 내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도 보겠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백성에게 공포합니다. 이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성벽 쌓기에 힘씁니다. 그러나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훼방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롱과 비난을 일삼으며 일하는 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그들을 분열시키려 했습니다. 또한 멀리서 구경만 하던 귀족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훼방자들과 방관자들은 성벽이 재건되었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을 결코 함께 누리지 못했고, 나중 책망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사사기 25장에는 드보라가 메로스를 저주한 사건이 있습니다. 왜 저주했는지 압니까? 메로스가 시스라와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을 돕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장로가 성전을 다시 건축한다는 목사님의 공고가 나자 교회를 옮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통탄할 일이지요.
9월 8일 추석날, 서울시청광장에서 있는 평화통일 기도성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일입니다. 동시에 우리 후손에게 아름다운 이 강산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물려줘야 하기에 우리의 일입니다. 이 일에 우리는 방관자가 되면 안 됩니다. 더욱이 훼방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목사님이나 전도사님 눈도장이나 찍으려고 눈 가리고 아웅 해도 안 되고, 생색만 내도 안 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일해야 합니다. 의무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가지고 일하고, 직업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으로 일하고, 노동이라 생각 말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 하고 전쟁이 시작되면, 외국에서 공부하는 이스라엘 학생과 아랍권 학생이 동시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전쟁에 참여하러 본국으로 돌아가고, 아랍권 학생들은 행여 전쟁터에 끌려갈까봐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누가 이기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평화통일입니다. 이는 간구해야 옵니다. 우리가 작년부터 계속 국가를 위해 기도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그런 소원을 주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려는 뜻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그러니 우리가 개최하는 평화통일 기도성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이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성회에 참여할 것을 적극적으로 독려합시다. 이 평화통일 기도성회는 비록 작은 시작이지만, 이것이 나비효과를 나타내어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킬 것이고, 머지않아 이 나라에 평화통일이 다가올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끝으로 이 평화통일 기도성회에 물심양면으로 애쓰고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주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할렐루야!
외줄보다
삼겹줄이 강하다
대결의 구도가 아니라
협력의 구도로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