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병법을 가지고 나가자
최근 우리나라 극장가에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명량’이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다양한 재조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순신 장군이 그렇게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충(忠)’과 ‘애민(愛民)’을 꼽는데, 그는 민족을 사랑하고 왕에게 충성하기를 자신의 아들의 죽음은 물론이요 자신의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도 국가와 부하들의 안위를 염려했던 그런 수준의 것이었다. 이 같은 이순신의 나라 사랑은 부하들에게 전염되고 백성들을 감동시키며 24전 24승이란 전설적인 업적으로 보답되었고, 그의 진심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 우리세대의 마음까지도 움직이고 있다.
성경에도 수많은 전투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경에 기록된 전투는 모두 사람의 전투력이 아닌 전쟁에 나서는 성도들의 믿음과 기도를 통해 승패가 갈린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보라. 양치기 소년과 완벽한 체격조건과 무기를 갖춘 전문 군인과의 싸움이다. 이스라엘 군대 모두가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 떨었으니 싸움의 전세만으로 평가했을 때는 얼마나 불리한 싸움이었을지 알만하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다윗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 즉 믿음으로 싸웠고, 그렇기에 돌멩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출애굽 당시 아멜렉과의 전투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런 침략에 당황했을 지도자 모세는 오히려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하지 않고, 오히려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는 전쟁의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오른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거룩한 손을 들고 하나님께 전쟁을 맡겼고, 아론과 홀이 모세의 팔을 받쳐 들고 함께 중보하자 불가능할 것 같은 전쟁은 승리로 막을 내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도 전시를 맞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땅의 전쟁을 막기 위해 ‘평화통일 기도성회’라는 ‘영적 전쟁’을 선포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성경병법, 즉 성경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저 넓은 시청광장을 우리가 어떻게 채운단 말인가?’, ‘추석 명절인데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눈에 보이는 전쟁의 조건에 연연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다윗이 그러했듯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닌 만군의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전쟁이니 그것을 채우시는 것도, 이루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며, 그렇게 대단한 싸움이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 위대하게 빛날 것이 아닌가 말이다.
혹시 몸이 아프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직접 집회를 이끌어 가거나 전도에 나서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아론과 홀처럼 이 싸움을 이끌어가시는 목사님의 두 팔을 받쳐 들듯 중보기도로 함께하면 어떨까? 불리한 전쟁, 험난한 전투에서도 우리의 중보기도가 집회를 진두지휘하는 목사님과 성도들을 지원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놓칠 수 없는 귀한 사역이 아닐 수 없다.
때를 놓치지 말자! 지금은 우리가 전심으로 이 영적 전쟁에 애쓰고 힘써야 할 때이니 진리의 띠를 띠고, 믿음의 방패와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고, 이 땅에 전쟁을 원하는 강력한 사단의 공격을 각자의 자리에서 막아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이 땅 위에 밝히 드러내야 하리라!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하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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