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예수중심인들이여!
경기도 가평군에 소재한 ‘가평 고등학교’. 이 학교는 본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가이사 중학원’이 그것이다. 이름도 생경한 이 학교가 세워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6.25전쟁이 한창이던 38선 인근. 패인 골짜기마다엔 젊은이들이 흘린 피와 살점들로 메워지고 있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고자 피아간에 서로 뺏고 빼앗기는 처절한 사투가 벌어진 것이다. 가평 인근의 화악산은 그 처절함의 정점에 있었다. 경기도 내 최고봉으로서 그 유명한 철의 삼각지대를 아우르는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52년 3월, 포연이 자욱한 이곳에 돌연 학교가 세워졌다. 바로 ‘가이사 중학원’이다.
당시 갑작스럽게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전국에는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1951년 9월부터 이 지역 학생 150여 명은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임시로 만든 천막 교실에서 급조한 교재로 자신과 민족의 꿈을 이어나갔다. 누군가는 이 땅의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려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민족의 내일을 위해 땀을 흘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불타는 향학열은 당시 미 40사단장 클레랜드 장군을 감동시켰다. 그리하여 40사단 장병들을 대상으로 ‘학교 건립을 위한 2달러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1만 5천여 명 전원이 이에 동참한 것이었다. 전 사단 병력이 말이다. 그 기금을 바탕으로 학교가 세워지게 되었고, 이 학교는 지금껏 우리 사회의 수 없이 많은 일꾼을 양성하고 있다. 얼마 전, 전쟁이 끝나고 60여 년이 지나 학교를 방문한 참전 용사 데이빗 플레시 옹(翁)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윗세대의 희생을 감사히 여기길 바랍니다. 바로 이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다.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는 불완전한 자유다. 휴전선 너머 3대 세습으로 이어진 북한의 존재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복마전과 같은 답답한 현실을 헤쳐 나갈 길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께 있다. 바다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블레셋 군이 몰려왔을 때 사무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심하고 몰려든 모압-암몬 연합군대 앞을 막아선 여호사밧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치 메뚜기 떼와 같이 근동지방을 휩쓸어버린 앗시리아 대군 앞에서 히스기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비하고 나아가 이 땅의 안녕과 이 나라 이 민족의 내일을 위해 함께 부르짖어야 한다.
단언컨대 이번 ‘9·8 평화통일 기도성회’는 위기사회 증후군에 빠져 안이해져 버린 대한민국을 깨울 위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 놀라운 역사에 하나님은 당신을 부르고 계신다. 그 부르심 앞에 당신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신현명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