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웃어보아요
평소에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웃고 있나요, 인상 쓰고 있나요, 아니면 표정이 없나요?
무심코 짓고 있는 그 표정들은 차곡차곡 얼굴에 쌓이고, 그 얼굴은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남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나이 마흔이면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지요.
어릴 때 우리는 모두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3, 4백번이나 웃는다고 하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하루에 15번 정도밖에 웃질 않는다고 합니다. 웃는 아이가 웃지 않는 어른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웃을 일이 없어서요? 사실 그것은 핑계입니다. 웃음은 선택이기 때문이지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늘 짜증이 가득한 사람은 좋은 일이 생겨도 그 속에서 기어코 불평할 거리를 찾아내고, 잘 웃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 속에서 감사할 일을 찾아냅니다. 웃음과 짜증, 그 선택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지요.
웃음이 많은 사람들은 긍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자 셰드 헴스테더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약 6만 가지 생각을 하는데, 이 생각 중 75%인 4만 가지 생각은 저절로 부정적으로 흐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웃음은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기쁜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준다고 하지요. 다행히도 우리 뇌는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구분하지 못해서 억지로 웃어도 위의 연구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스트레스가 풀리고 건강이 좋아집니다.
20대 초반에 저는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억지로 웃는 것이 가식 같았고, 그래서 무표정일 때가 많았지요. 그 땐 ‘첫인상이 차갑다, 다가가기 어렵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는데요.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재미없거나 썰렁해도 억지로 막 웃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웃음이 진짜 많아졌습니다. 잘 웃으니까 기분도 좋아지고 좋은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분위기도 좋아졌고요. 요새는 차가워 보인다는 말도 거의 듣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웃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 같습니다. 나만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까지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웃음은 옆으로, 옆으로 퍼져나가 누가 웃으면 나도 따라서 웃게 되고, 내가 웃으면 내 주변도 덩달아 웃게 되지요. 그러니 매일, 억지로라도 웃어보세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가족을 보며, 친구를 보며, 직장 동료를 보며 하하하 웃어보세요. 그 웃음으로 인해 내 인생과 남의 인생까지도 조금씩, 조금씩 좋은 쪽으로 바뀔 거예요.
신은혜
dopal0203@naver.com
사랑, 그 위대한 이름
“항상 사랑과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눈을 떠서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어요.”
생후 9개월 만에 시력, 청력을 잃고 말도 하지 못하는 삼중고 속에 평생을 살아간 헬렌 켈러의 고백이다. 알려진 것처럼 그녀는 삼중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의 언어에 통달하고, 20세에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으며, 세계를 다니며 자신과 같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등 감동적인 삶을 살았다. ‘물’이라는 한 단어를 익히는 데만도 7년이 걸린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공적인 그녀의 삶 뒤에는 7세부터 이후 48년간을 헌신적인 사랑과 인내로 보살펴준 설리번 선생님이 있었다. 그러나 아는가? 헬렌 켈러를 기적의 주인공으로 만든 앤 설리번 자신이 시각 장애인이었으며,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학대와 동생을 잃은 충격으로 미치고 실명까지 하여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이는 노년의 은퇴 간호사 로라였다. 로라의 지속적이고 끈질긴 관심과 사랑으로 앤은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시각장애인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후 수술을 통해 시력도 회복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한 극한의 어둠과 고통 가운데 삐뚤어져 제멋대로 살아가던 헬렌 켈러를 품음으로 로라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었다. 남들의 만류에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라는 이 한마디로 일축하며.
이렇게 한 사람의 사랑과 헌신이 또 다른 사랑과 인내를 일구어내어 20세기 최고의 기적이라 일컫는 헬렌 켈러의 삶이 탄생한 것이다.
반면 지난 1997년 탈옥하여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가 2년여 만에 재수감된 신창원. 그는 말했다. 어릴 적에 ‘너 착하다’고 머리 한 번 쓸어주는 선생님 한 분만 있었어도 자신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아직 청소년이었던 아들을 끝내 구속 수감시키라고 주장한 아버지와 돈 없는데 학교에 왜 왔냐며 집으로 돌려보낸 선생님에 대한 미움과 반항심은 결국 자기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일그러뜨린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사랑의 유무는 우리 삶에 정반대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 주님은 택하신 제자들을 사랑하사 끝까지 사랑하셨으며, 자신을 팔 자임을 아시면서도 가룟 유다를 마지막까지 품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희생 제물로 삼으심으로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을 몸소 보이셨다.
그렇다. 깊고 진실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놀라운 열매를 맺기까지는 반드시 초인적인 인내와 희생이 동반된다. 그 사랑은 화려하지도 남들보다 뛰어나 보이게 하지도 않는다. 목숨까지 바쳐 복음을 전하고 이국땅에서 죽어간 선교사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지금 그 땅에 꽃피운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곧 그 희생의 열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하자. 그리고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달려 돌아가신 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소망을 품고 인내하여 사랑과 헌신의 씨앗을 뿌리자. 이것이야말로 영적 세계, 육적 세계에서 부패되지 않을 성공을 잡는 참된 길이다.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