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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넓혀 통 큰 자가 되라 (고후6:13)

755호 · 2014-08-15

어떤 성도가 담임 목사님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미워서 다른 교회로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담임 목사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커피 잔에 소금 한 스푼을 타더니 건네면서 마시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목사님이 마시라고 하니까 그것을 마셨는데, 얼마나 짠지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는 못 마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이번에는 1.5L짜리 생수 병에 똑같이 소금 한 스푼을 타더니 다시 마셔보라고 했습니다. 이 성도는 목사님이 왜 이러시나 하면서도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이건 마실 만하네요.” 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제야 입을 열었습니다. “집사님, 소금이 문제가 아니라 그릇이 문제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작은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넓은 집을 좋아합니다. 차도 넓은 차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집을 넓히려고, 큰 차 타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마음만은 넓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제게 믿음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분은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하셨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면 그 분을 회상하고 그 분이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곤 합니다. 언젠가 어머니가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목사, 누군가 자네를 밟고 일어서려고 하면 그냥 밟혀주게나. 내가 밟혀서 그 사람이 산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이 목사가 살겠다고 다시 그를 밟는다면 그 사람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당시 가깝게 지내던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살겠다고 그 일과 무관한 저를 모함하고 저주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그 사람까지 품을 수 있는 통 큰 자가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품는 바다 같이 넓은 마음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성경에도 통이 큰 자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애매한 고난을 받은 자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물리치고 나자 사울은 그를 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군대장관으로 삼았는데, 그의 지략을 보고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찬양을 했습니다.

(삼상18:6~7). 그러자 사울이 시기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사람이 죽일 수 없다 하여 죽이지 않고 굴속에서 옷자락만 베었습니다(삼상24). 또한 진중에서 사울이 자는 것을 보고 그 머리맡에 놓인 창과 물병만 가지고가서 건너편 산에 있는 호위장 아브넬에게 왕에 대한 호위가 허술하다고 오히려 나무랐습니다(삼상26:6~16). 대인배지요. 그런 통이 큰 자가 왕이 되어야 함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소인배인 사울의 왕관을 다윗에게 넘기신 것입니다.

통이 큰 자가가 또 있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되었고,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되었습니다. 기근이 심할 때 요셉은 정사를 잘 살펴 애굽을 최대 국가로 키웠고, 이 때 형제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 와서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됩니다. 형들은 자신들의 과오로 인해 보복을 당하게 될까 걱정할 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45:7~8). 대개의 경우 형들에게 보복을 하려 했겠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하고 그들을 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디 다 통이 큰 자들이겠습니까?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탕자가 자신에게 유산될 돈을 미리 받아 다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돌아와 자신을 종으로 받아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게 무슨 말이냐? 돌아온 것만도 고맙다.”며 잔치를 엽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맘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맏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15:29~30).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돌아왔으면 달려가 안고 기뻐해야 형이지요. 그러나 속이 좁으니 그런 겁니다.

그런 형이 또 있습니다. 가인입니다. 가인은 동생인 아벨의 제사만 하나님이 받으신 것을 시기하여 동생을 돌로 쳐서 죽입니다. 통이 큰 형이었다면 동생을 대견해하며, 깨닫고 자기도 진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통이 큰 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간 데에는 요나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인들의 잔악무도한 행동을 하나님이 용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곧 원수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도무지 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거역한 요나를 용서치 않으시고 물고기 뱃속에 가둬 회개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통 큰 자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제가 처음 해외집회를 간 곳은 일본입니다. 사실 저도 요나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36년간의 일본의 만행과 여전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기에 그들에게 복음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게 가라고 명령하셨고, 결국 지금 일본에 27개 교회를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성경에는 통 큰 자가 되라는 직접적인 말씀은 없습니다만,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39~42)고 하셨고,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라고도 하셨으며,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21)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6:11~13)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해야 통이 큰 자가 됩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요13:34). 사랑하면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이 큰 자가 되는 또 하나의 길은 내 속을 비우는 것입니다. 가장 큰 그릇은 비어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워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그랬듯이, 우리 주님이 그랬듯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통 큰 자들이 됩시다. 통 큰 국가, 통 큰 목회, 통 큰 기업이 됩시다. 밴댕이 같은 자 말고, 태평양 같은 자가 되어 세상을 품읍시다. 그럴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바다는 모든 오물을 받아

소금으로 정화(淨化)시킨다

가득 차있는 컵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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