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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752호 · 2014-07-25

파블로 피카소. 스페인 출신의 20세기 대표적인 천재 화가다. ‘큐비즘’이라 하여 전통 미술이 2차원적인 표현의 한계에 머물러 있을 때, 그 형식의 틀을 깨고 입체적인 표현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오늘날 현대 미술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몇 년 전, 그의 한 미공개 작품이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293억에 팔린 일이 있다. 그의 명성을 짐작케 하는 사건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필자는 그의 작품이 아직까지 낯설기만 하다.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 ‘꿈’, ‘아비뇽의 처녀들’…. 그의 대표작들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듣고 또 서적을 들춰봐도 머리로는 ‘그런가 보다’ 하는데 쉽게 와 닿지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필자에게도 정말 엄청난 감동을 준 피카소의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황소머리’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어느 날 피카소는 산책하던 길에 우연히 고물상을 지나게 된다. 그곳에선 한창 버려진 고물 자전거를 분해하여 폐기 처분하는 와중이었다. 그는 그 때 떠오른 영감을 가지고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바로 사진속의 이 작품이다.

그런데 이 ‘황소머리’라는 작품의 재료가 정말로 신선하지 않은가? 아주 낡고 녹이 슨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이 전부인 것이다. 여기에 그 어떤 기교나 인공적인 꾸밈도 가하지 않았다. 본래 그 모습 그대로의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버려질 쓰레기일 뿐이었지만) 자전거 안장에다 핸들을 거꾸로 붙여 완성시켰다. 말 그대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우리에게 ‘반전(反轉)의 미(美)’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다.

‘예술이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던 피카소의 말처럼, 사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단지 우리 자신이 발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 ‘가치란 내가 어떤 마음, 또 어떤 자세로 그것을 대하고 있느냐’로 결정되어진다. 제 아무리 소중한 것도 그 소중함을 모르고 가벼이 여기는 이에게 가치는 더 이상 논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지극히 작은 것에도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는 이라면, 이 세상 모든 것이 그에겐 도전이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헤밍웨이의 마지막 역작이었던 ‘노인과 바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얼마 후면 또 수련회가 다가온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우리 젊은이들이 총회장 목사님의 메시지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신현명 목사

yeddo1@hanmail.net

황금률을 넘어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던 연인과 헤어지기도 하고, 죽마고우 같은 친구와 결별을 선언할 때도 있으며, 영원히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가족들과 멀어지게 될 때도 있다.

사람은 누군가와의 만남,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된다. 어떤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서 상대방의 성격이나 취향, 좋아하는 것 등을 알아내고 맞춰 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즉, 투자비용보다 이득이 많다고 생각하면, 그 관계는 형성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 여겨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된다는 것을 ‘사회적 교환이론’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관계는 ‘내가 상대에게 이만큼 해줬으니, 상대도 나에게 이만큼 해주겠지?’와 같이 투자와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비용이나 이득에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부분이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보상과 관련해서 많이 기대하는 사람들보다 적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관계에서 더 큰 만족을 보인다고도 설명한다. 이와 비슷하게 성경에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며

‘황금률’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상대에게 해준 만큼 대접받기를 원하거나, 그 이상의 대우를 바란다. 일례로 친했던 단짝친구와 싸워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이면에는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어떻게 나를 그렇게 대하니?’ 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보상을 기대하면 불완전한 관계가 된다. 투자와 이득이 비례하지 않으면 순간 깨질 수 있다. 그러므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마음,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면 심은 만큼 거두지 못해도 낙심되지 않을 것이다.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어느 찬송가의 가사처럼,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값없이 받았으니 거저 주는 황금률을 넘는 풍성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박선인

sunin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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