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빌3:10~14)
우리 해외선교 드림팀의 일원인 김성자 전도사는 70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미에 갈 때마다 커다란 가방에 고추장이며 햇반이며 갖가지 밑반찬을 챙겨 미국으로부터 날아옵니다. 어느 날, 비행기 연착으로 고생한 김 전도사에게 “할멈은 왜 그 나이에 힘들게 이 일을 하는 거요?” 하고 물었더니, 김 전도사는 일초도 망설임이 없이 “하늘의 상 때문이죠. 그 나라에서 가서 받을 상을 생각하면 이 정도 고생은 고생도 아니죠.”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얻지만, 하늘의 상은 수고하고 노력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우승상 타는 애들을 보면 남들과 다르게 공부에 열중합니다. 심지어 개근상을 타는 애들을 보면 아파 끙끙 앓으면서도 학교에 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늘의 상도 예외가 아닙니다. 남들보다 노력하고 애써야 하늘의 큰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믿음은 하늘나라에 가면 예수님과 함께 한 상에 앉아 심판하고 열 고을의 왕으로 사는 것입니다. 누가 비웃거나 말거나 그것이 제 믿음이며, 소망이라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9~30).
여러분, 하늘나라에는 우리가 받을 상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의 신앙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늘의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친히 산상수훈에서 하늘의 상급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
초대교회 성도들과 선지자들은 복음을 전하다 화형을 당하고, 목 베임을 당하고, 사자에 찢겨 죽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다 죽는 순교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순교는 꼭 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순교도 순교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예수 믿는다고 핍박 받는 것, 제사 지내지 않는다고 얻어맞는 것, 교회 밖에 모른다고 친구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당하는 것…. 모두 주를 위해 당하는 수난입니다. 제가 이단의 괴수요, 쓰레기 취급을 당하면서도 이 길을 가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받는 핍박이 곧 내가 받을 큰 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핍박이나 환난 중에도 죽기까지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이는 전도하는 자가 상급으로 받을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눅15:7) 당연히 상이 있습니다. 어느 귀인이 먼 나라로 가면서 그 종들을 불러 각각 한 므나씩을 주고 돌아와 회계할 때,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 다른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으나 한 종은 한 므나를 그대로 내놓자, 주인은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도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했으나, 남긴 것이 없는 종에게는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눅19:12~ 27).
셋째, 인내하는 자가 받는 상도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정금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감사함으로 잘 이겨내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되면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넷째, 절제하는 자의 상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 보면 바울이 스스로를 절제하며 복음에 참예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고전9:18~27).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서신을 통해 의의 삶, 곧 복음을 위해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 의의 면류관을 받으라고 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또 자기에게 맡겨진 양을 잘 치면 주는 상도 있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5:2~4).
그러나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를 행하든, 인내든, 절제든, 전도든, 구제든 드러나게 하는 것에는 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 교회에서도 선행상이나 전도상 등을 수여하자고 하는데, 그건 그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을 빼앗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다’의 저자 박용규 목사님이 천국에 갔을 때 자기 집에 가보니 3층 방의 벽에 달랑 상장 2개가 붙어있었습니다. 하나는 18세 때 성탄절에 거지에게 잠바를 벗어준 것이었고, 또 하나는 붕어빵 두개를 사서 준 것이었습니다. 박 목사님은 “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었고, 아파트를 지어 가난한 과부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신학생의 학비를 도왔다. 또 교회를 지어 부흥도 시켰는데, 왜 고작 상이 이것뿐이냐?”고 따졌더니, “너는 땅에서 국민훈장도 받았고, 문교부 장관상도 받았고, 신학생들에게도 명절 때마다 감사를 받았으므로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1~2).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수고하면 이 땅에서 영광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하늘 아버지의 칭찬과 상급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는 받아놓은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잡았다 함도 아니요, 이뤘다 함도 아니요, 오직 푯대를 향해 뛴 것은 그 날의 상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빌3:12~14). 고난과 핍박마저도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도 불사하고 그 길을 갔던 것입니다(롬8:18).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다 하나님이 아시고, 행한 대로 보상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외상이 없습니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이란 말이 있지요? 공로를 조사하여 크고 작음에 따라 서열을 매겨 상(賞)을 내린다는 말입니다. 하늘나라에도 이것이 반드시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상을 위해 우리 모두 믿음의 경주를 마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합시다. 할렐루야!
주를 위해 무엇을 심었는가
주를 위해 얼마나 심었는가
구원의 믿음의 분량을 넘어
상을 바라보는 믿음이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