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효과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충격을 재앙으로 몰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충격을 에너지 삼아 뛰는 사람이 있다.”
전자가 지극히 감정적인 사람이라면, 후자는 매우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이다. 외부자극에 항상 아메바처럼 단순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으로 보아도 역사인식의 차원에서 국민성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참사들을 보면 늘 똑같은 말이 되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고는 철저한 인재(人災)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사전에 철저한 대비와 매뉴얼에 따른 조치만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고였다는 말이다. 대형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숱하게 접한 멘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단 한 치의 개선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이는 진정 역사의식의 부족이다.
경험을 했으면, 그 경험을 토대로 변화해야 하는데 전혀 학습효과가 없다. 사고당시에는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난리법석을 떨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고 만다.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던 정부도, 이를 감시해야할 국회도, 언론도, 나아가 일반 대중조차 새로운 이슈에 매몰되고 만다. 문제를 인식했으면 그 문제가 개선될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철저히 추적 감시하는 국회, 언론, 나아가 국민 다수의 절대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마땅하다. 너무나 참담한 사고에 온 국민이 오열하고 탄식하는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감히 말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이미 당한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국제적 위신도 말이 아니고, 사고당사자나 가족들의 참담함에 할 말을 잃고 함께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러나 정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이번 사고를 경험하며 저만 살겠다고 나온 부류가 있는가 하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여준 영웅들이 있다. 과연 이 경험은 어떤 학습효과를 낳을까? 어쨌든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으로 기운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정말 이 나라가 전통과 명예를 중시하는 나라로 성장해가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4). 무엇이 진정으로 사는 길인지 되새기게 하는 가르침이다. 우리의 삶을 단순히 육체적인 삶과 죽음으로만 나누고,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여기는 단순한 사고로써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경지이다.
이제는 정말 변화해야 한다. 부디 이 충격이 이 나라에 새로운 시민의식이 형성되는 역사적 에너지로 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한은택 전도사
henry8829@naver.com
낙인이론
수업시간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8살짜리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고,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기 일쑤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전형적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였습니다. 걱정이 된 엄마는 딸아이를 심리상담가에게 데려갔습니다. 20여 분간 엄마와 상담을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도 이 아이는 불안하며 긴장되고 산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상담가는 혼자 있는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할 것을 엄마에게 제안했고, 그리고 방 밖으로 여자아이를 내보냈습니다. 복도에선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그 음악에 여자아이가 몸을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 선생님도 엄마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저 아이는 산만한 게 아니고, 타고난 댄서예요.”
이 꼬마아이가 자라 뛰어난 발레리나가 되었고, 그 후 안무가로서 ‘캣츠’와 ‘오페라 유령’ 등 뮤지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만든 ‘질리언 린’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아이의 가능성을 장애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둬 낙인찍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낙인이론’이란 어떤 사람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일탈행위자로 낙인을 찍어 당사자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더 저지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쉽게 말해 어떤 청소년이 일탈행위를 해서 비행청소년이라는 명칭이 붙으면 주위사람들은 그를 달리 대하게 되며, 그 부정적인 인식이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쳐 마침내는 더 많은 일탈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위사람이 변하지 않거나 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는 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볼 때면,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며 낙인찍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으로 낙인찍지 않으셨습니다. 죄의 종으로 영원히 살게 될 우리들을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이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8).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인애는 끝이 없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 우리의 모습에 좌절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바뀌지 않는 인생은 없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바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듯, 시간을 요할 뿐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더딘 것 같지만 결국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눈이 와도 붙어 있으세요. 실패와 좌절을 거름으로,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으로 매일매일 포도나무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으면 언젠간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박선인
sunin9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