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조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며, 누구든지 자신의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예수를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면 오히려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마16:24~25). 이는 예수를 위해 지는 십자가의 무게에 따라 부활의 기쁨도 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경을 보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한 사람이 있다.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목에 우연찮게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쓰러지실 때 병정들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십자가를 지게 된 사람이다. 마가복음 15장 21절에‘억지로 지게 했다’는 구절이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몬의 표정과 행동이 참으로 억울함 그 자체였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학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이 지셨을 십자가의 무게가 약 60kg정도였다고 하니 ‘내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머리를 맴돌고 어깨에는 깊은 멍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날 이후 그가 변화되고 그의 가정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후에 구레네 시몬이라는 이름이 성경에 직접적으로 다시 등장하지는 않지만, 로마서 16장 13절에 보면 시몬의 아들 ‘루포’가 성경에 등장하는데, 사도 바울이“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고 고백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도 바울이 구레네 시몬의 아내, 즉 루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억지로 지고가는 십자가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축복하셔서 신앙의 명문가로 거듭나게 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고, 또 그 위에 매달리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수준은 채찍에 맞아 아픈 것이 아니라 채찍을 때리는 자들의 무지함이 아프셨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통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게 한 그들의 자손이 염려되어 그들을 위해 울라고 당부하시는 그런 수준의 것이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었던 시몬이 그렇게 하나님께 기억된바 되어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의 수준에 동참한다면 과연 어떤 부활의 축복을 받게 될까?
오는 5월 20일 오후 3시, 서울시청 광장의 ‘평화통일 기도성회’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좋다. 아니, 죄로 단절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십자가의 고난으로 화평케 하신 예수님처럼 기꺼이 그분의 수준이 되어 기도와 헌신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남북 평화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나는 고난과 멸망으로 끝날 것이라는 사탄의 조롱을 무력화 시키신 예수님의 부활처럼, 우리의 진심 어린 기도와 동참이 이 땅에 평화 통일의 꽃을 활짝 피어낼 것을 확신한다!
하인명
renming@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