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일과 금장시계
1990년의 일이다. 그 당시 신학교에 입학한 필자는 매주 목포와 서울을 오가고 있었다. 입학과 동시에 목포의 개척교회에서 곧바로 사역을 시작했었기 때문이다.
버스로 상경하던 어느 날이었다. 중간 휴게소에서 정차 중이던 버스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두 사람이 올라탔다. 그런데 난데없이 숫자가 적힌 표를 나눠주더니 드라마 ‘무풍지대’에서 유지광역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나한일 씨가 금장시계를 차고 있는 모습이 찍힌 포스터를 보여주며 솔깃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회사 홍보 기간이라 단지 몇몇 분들에게만 드리는 기회입니다. 스위스○○사와 기술 제휴하여.... 솰라솰라.... 보시다시피 배우 나한일씨가 보증합니다.”
정리하자면 ‘제비를 뽑아 딱 두 사람에게만 고가의 남여 금장시계 한 세트를 홍보차원에서 단지 3만원에 주겠다’는 것이었다. 화려한 금장시계, 유명 연예인이 모델, 그럴듯한 품질보증서, 그리고 불과 몇몇에게만 주어지는 제한된 기회…. 제법 솔깃한 제안이지 않은가?
설명이 끝나고 제비를 뽑는 긴장된 순간, 그때 생각지도 못하게 내 번호가 불려졌다. 얼결에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는 시간이 없으니 빨리 결정하라며 다그친다. 갈등은 짧았고 결정은 신속했다(실상은… 정신이 없었고 욕심이 앞섰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신학을 온 터에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었는데, 어쩌면 어색해진 그 관계를 되돌리기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으리라 나름 생각했다. 그래서 이 행운에 감사했다.
하지만 행운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그날, 저녁 뉴스에서 ‘전국의 휴게소를 대상으로 활동하던 전문 사기단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특종으로 보도된 것이다. 배경 화면엔 문제의 나한일 씨의 포스터도 스쳐지나갔다.
순간 입맛이 썼다. 하지만 드러난 외적 조건만 보고 냉큼 판단해버리는 실수는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행운이란 사실, 하늘에서 ‘딱’ 하고 떨어지듯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준비한 자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기회요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영어로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표현이 있다. ‘책의 표지만 보고 그 책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의미다.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게 세상일이요 또 사람이다.
내용이 실할수록 겉포장 또한 중요하겠지만 먼저는 내용, 즉 알맹이가 아니겠는가?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으로 보신다’고 사무엘상 16장 7절 또한 우리에게 교훈한다.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옛사람 중 하나는 ‘화이부실(華而不實)한 사람’을 경계했다. ‘꽃만 무성하지 열매를 맺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겉포장에 속지 말자. 섣불리 판단하지도 말자. 지금 당신은 어떠한가?
신현명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