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다림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주창으로 성도(聖都) 예루살렘 회복에 나선 1차 십자군은 성공적인 예루살렘 공략으로 약 100여 년간 중근동 지역에 십자군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이슬람 세력의 분열에 힘입은 바도 컸기에 살라딘의 등장으로 이루어진 이슬람권의 통일은 예루살렘 왕국에 큰 위협이었다. 살라딘 군의 총공세에 잔여 병력을 총동원하여 맞섰지만 역부족으로 대패한 후, 성도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야파의 영주 발리앙 이벨린이었다. 그는 1차 십자군에 참전했다가 현지에 정착한 이탈리아인의 후예로 철저히 중근동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다.
살라딘과의 전투에서 대패한 후, 간신히 티루스로 피신한 그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처자식을 구하기 위해 살라딘에게 서신을 보낸다. 살라딘은 평소 그를 무장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던 터라 이를 허락하되 단 하루의 시간을 주며 처자식과 함께 티루스로 떠나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들어간 그는 공포에 떨고 있는 주민들을 보았다. 이벨린은 도저히 예루살렘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예루살렘 방어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렇지만 그는 살라딘과 사내로서 약속을 한 상태였다. 이벨린은 살라딘에게 편지를 써서 약속 깨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한다. 살라딘은 이를 인정하고 이벨린의 처자식이 티루스까지 가는데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벨린은 얼마 안 되는 병력을 이끌고 사력을 다해 살라딘의 대군을 막는다. 그러나 중과부적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이벨린은 살라딘에게 회담을 청했고, 둘은 살라딘의 천막 안에서 만난다. 이벨린은 최후의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며, 시내에 있는 5천명의 이슬람교도를 모조리 죽이고, 예루살렘 시내에 있는 모든 이슬람의 성소와 사원을 파괴할 것이라고 당당히 경고한다. 동시에 예루살렘에 있는 1만 5천명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몸값교섭에 나섰다. 부족분에 대해서는 이벨린 자신의 사유재산까지 내놓으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살라딘은 감격했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살라딘의 동생 알 아딜 역시 감격해서 1천 명분의 몸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나섰다. 살라딘은 노인과 미망인, 고아는 몸값을 받지 않고 오히려 필요한 돈까지 주어 예루살렘을 떠나게 했다. 이리하여 포로가 된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1187년 10월 9일 예루살렘은 이슬람 군에 함락되었다. 그러나 이벨린이 보여준 헌신과 열정은 적조차도 감동시킨 명작이었다. 한 명의 유태인이라도 더 살리려 애썼던 오스카 쉰들러를 대하는 감동이 밀려온다. 한 영혼이라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살신성인의 자세는 적조차도 감동시키는 것 아니겠는가! 한 영혼이라도 더 천국으로 인도해야 하는 우리 크리스천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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