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 선 오브 갓(Son of God)이 개봉했습니다. 그 영화를 보고 난 소회를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외치며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 타고 입성하실 때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환영하는 중 한 유대인이 “빨리 우리를 로마로부터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오른 편에 못 박혀 있던 죄수는 “정말 메시아거든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며 그분을 조롱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온통 세상의 것들뿐이었습니다. 물질의 풍요에 대한 기대,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를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기대, 죽을 목숨을 살리실 것이라는 기대.
예수님께서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인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구합니다. 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율법을 잣대로 들이대며 공격합니다.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고자 하는 데 눈이 멀어 자신들의 신앙의 핵심이며 본질인 하나님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유대인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내가 저 시대에 살아가던 사람이라면, 정말 예수님의 병 고치는, 가난에서 해방시켜주시는 권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나는 저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할 위험은 없는가 생각해봅니다. 나름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서 내 신앙생활 자체가 신앙의 전부인 줄 알고 그 방식 지키려다가 정작 하나님은 놓쳐버리는 순간이 내 삶에는 잃어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나. 내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저들과 달라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기도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자신들끼리 모여서 예배드리는 모습과 빌라도의 아내가 조상신(ancestor)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오버랩되어 나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최선의 열심을 다하면서 자신들 나름의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저 때만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어디서는 지나가는 소에게 절하고, 어디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때 맞춰 메카의 방향을 향해 절하고, 심지어 어디서는 인생의 경이로움을 예배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 본체시나, 종 된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단번에 산제물로 드려지셨습니다. 우리 때문에요. 당신과 나 때문에요. 그리고 부활하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이처럼 명령하시고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요한을 찾아오신 주님은 곧 다시 올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또 “처음과 나중”이라고. “알파와 오메가”라고. “시작과 끝”이라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히브리서를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이 순종하지 않아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 죄를 속하셨는지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그분의 구원하심을 믿는다면, 그분의 은혜로 단번에 우리 죄를 속하여 주셨음을 믿는다면 그분을 전할 생각에 가슴이 뛰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랑을 전할 차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김슬아
gratiaseul@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