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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어둠 속에서는 아군과 적군을 모른다 (요1:1~13)

730호 · 2014-02-21

어느 신참 전도사가 가난한 달동네에 전도를 나갔습니다. 전도사는 다 쓰러질 것 같은 집의 대문을 두드리며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에 집안에 있던 여인네가 나오면서 전도사에게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아니, 지금 사는 게 지옥인데, 죽은 다음에 천국이 무슨 소용이요? 당장 꺼져요.”

그렇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은 부자 되라는 것입니다. 병든 자에게는 병에서 낫는다는 것이고, 부도난 자에게 복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 이것은 인류 최대의 복된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사면복권 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요하신 자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부유케 되었고(고후8:9),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으며,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찔림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사53:5).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난과 병과 저주에서 다 놓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인류는 어두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넘어져 다치고, 악한 것들이 날뛰는 통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곳에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습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46).

흑암과 혼동의 우주에서 하나님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빛이 있으라’였습니다(창1:3). 빛이 창조되기 이전의 세상처럼 영적인 세계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완전한 어두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주에 물리적인 빛을 허락하신 것처럼, 영적인 세상에도 참 빛이신 예수를 허락하셨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 한전에서 전봇대 하나만 세워줘도 동네 주민 전체가 감사하다고 하는데, 참 빛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산업혁명 이전까지 사람들은 어두운 밤에 횃불, 호두기름 등잔, 화롯불 등을 의지했습니다. 1681년에 쓴 밤에 관한 글을 보면 ‘걸핏하면 도시들은 불타고, 도둑질과 살인이 벌어진다. 밤이 되면 법이 맥을 못 추고 규칙이 달라졌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이 빛이 없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영적 빛이 없는 세상도 동일했습니다. 악한 것들이 날뛰고, 넘어지고,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첫째, 빛이 들어오니까 모든 것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우리를 넘어트린 것이 무엇인지, 내 것을 다 도둑질해간 것이 무엇인지, 왜 자빠졌는지, 나를 해치는 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그 정체는 바로 마귀였습니다. 악한 마귀가 그의 졸개인 귀신을 투입해서 우리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일이 될 만하면 안 되었던 것도, 내 몸을 괴롭힌 것도 다 마귀의 추종자 귀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마귀의 일을 진멸하려고 오셨고(요일3:8),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귀신을 내쫓으셨고, 부활승천 후에 우리에게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주셔서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게 하셨습니다.

둘째, 빛이 들어오니까 생명력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생명이 잉태되게 되었습니다.

엄동설한에도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납니다.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곳, 그늘진 곳에서는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벌레들만 우글거릴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지 않는 곳에는 영원한 사망만 있었습니다. 귀신 소굴이었지요.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새 생명, 거듭난 생명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도 받았습니다(요1:12).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6:11).

셋째, 빛이 오니까 따뜻해졌습니다. 빛이 비추면 얼었던 것들이 녹아내리지요. 예수님으로 인해 이 땅에 미움과 멸시와 정죄 대신에 진정한 사랑과 용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라,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속죄하셨으며,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요13:34),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하셨습니다(눅6:37).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는 자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건만 우리는 아직 이 모양 이 꼴입니까?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셨는데(요19:30) 왜 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매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추워 떨고 있습니까?

웬 줄 아십니까? 당신이 방에 짙은 커튼을 쳐놓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심령에 검정 커튼을 쳐놓고 예수님을 모셔 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태양이 빛나도 방에 커튼을 쳐놓으면 빛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전기시설이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어도 전기 스위치를 넣지 않으면 빛은 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를 위해 죽으셨고, 그 빛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은총의 빛일지라도(요1:9),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예수님은 그 안에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커튼을 젖혀야 합니다. 커튼을 젖혀야 빛이 들어갑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예수님이 들어가시고, 악한 귀신들이 나가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며, 만사가 형통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빛이 약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닫힌 심령이 문제입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커튼만 젖히면 되고, 전기 스위치만 올리면 됩니다. 그러면 어두움은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힘입어 쫓으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충전된 배터리를 끼운 마이크에 스위치를 넣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자들은 귀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만 그런 거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들어오듯, 방아쇠를 당기면 총이 나가듯, 예수 이름으로 내쫓으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뱀이 들어왔으면 몽둥이로 때려 죽여야지, 회의하다가는 다 물려 죽을 뿐입니다.

그리고 늘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빛이 꺼지는 순간 어두움은 바로 찾아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어두움은 다시 우리 심령에 찾아오고, 우리의 몸은 거룩한 성전에서 즉시 마귀의 소굴로 바뀌고 맙니다. 그래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살전5: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고 먼저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그래서 우리 교회는 창립 때는 물론,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도 변함없이 그 빛을 전파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새 생명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면서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 분이 당신 삶을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1:78~79). 할렐루야!

장독 뚜껑을 열어놓지 않으면

비가 내려도 들어갈 수 없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떠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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