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을 향하여
여보게!
또 한 해가 갔네. 허긴 가는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세밑이면 사람들 대부분이 망년회를 하지. 직장인들끼리, 지인끼리, 동창끼리 말일세. 한 해의 괴로움을 떨쳐보자는 거겠지. 열두 달 힘들게 살았는데 술 한 잔 기울이며 모든 걸 잊어버리겠다는 심산이려니 하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좀 다르네. 곧 가는 세월보다는 다가와 펼쳐질 새로운 해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네. 물론 유수 같은 세월이 야속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러나 잡을 수 없다면 그 세월을 유유히 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네. 세월에 질질 끌려가는 건 내 성질상 맞지 않네.
나는 세월의 주인공이 된 사람을 성경에서 보았네. 바로 야곱이지.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7년을 하루같이 살았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창29: 20).
야곱에게 그 세월은 힘들지도, 길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네. 그가 그렇게 세월을 이긴 비결이 뭔 줄 아는가? 그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네. 라헬을 얻겠다는 목적 말일세. 그 목적의식이 그를 세월보다 빠르게 달리게 했고, 세월의 바람을 이기게 했지. 어디 야곱뿐인가? 모세 또한 팔십 세에 사십의 기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야 한다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네.
여보게!
내 나이 70을 바라보며, 청춘 못지않은 체력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내게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네. 죄에 파묻혀 있는 지구촌을 예수님 앞으로 대탈출시킨다는 확고한 목적이 나로 하여금 세월을 이기게 하지. 그래서 내겐 망년회가 없네. 다만 올해를 기반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숱한 계획이 있을 뿐이지.
거리에 나가보면 마치 크리스마스가 연말축제인양 흥청망청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네. 그럴 때면 나의 목적이 더욱 분명해지고, 더욱 마음을 다지게 되지. 그러니 세월을 주도할 밖에.
정말 올해도 숨 가쁘게 달려왔네. 뒤돌아볼 틈도, 아플 틈도,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정말 열심히 달렸네. 목적이 나를 흡입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내가 새로운 해에 이렇게 설레는 까닭은 나의 목적을 다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네. 할 일이 있다는 것, 꼭 이뤄야 할 일이 아직 있다는 것이 내겐 소망이고, 기쁨이라네. 그래서 한 해의 끝자락에서도 우울함이나 상실감이 파고 들어올 틈이 없는 거야.
인생을 긴 노래 한 곡이라고 생각해보세. 그러면 일 년은 노래 한 마디에 불과하다네. 그러니 한 마디 잘못 불렀다고 노래를 망쳤다 할 수 있나? 지금 우리가 노래의 어느 부분에 있는 한 마디를 부르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직 노래의 뒷부분이 남아 있으니, 지금부터 쉼표 잘 쉬어가며, 박자 제대로 지켜가며 마지막까지 노래를 잘 부르면 노래를 마칠 때, 누군가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겠는가?
오늘 망년회 가려나? 어차피 잡힌 약속이라면 다녀오게. 그러나 망년회라 부르지 말고, 송년회라 부르게. 잊고 끝내는 해가 아니라 물 흐르듯 보내는 해라 부르게. 그리고 다가오는 한 해를 당당히 맞이하게나. 부푼 희망을 안고!
朋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