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없으면 할 일도 없다 (잠24:5~6)
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3가지 지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요, 둘째는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이요, 셋째는 실제 공부로 얻는 지식입니다.
저는 이번 파라과이 집회 중, 각 세미나와 교육을 통해 이것에 대해 중점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입니다. 이 지식의 기초는 나의 신분을 아는 것이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그 자녀의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가난과 저주와 병 속에서 허덕이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왜 그럴까요?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병들고,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겁니다.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버지 앞에 나가 당당히 요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도의 첫 부분이 뭡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가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당당하십시오. 나를 낳으셨으니까 책임지라고 당당히 요구하십시오. 그 분이 아버지니까요. 우리 자식들이 “아버지, 나 돈 좀 주세요.”, “아버지, 나 결혼 시켜 주세요.”, “아버지, 차 사 주세요.”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애들이 요구할 때 다스릴 수 있는 것이면 다 해주지 않습니까? 다만 아직 시기가 이르면 ‘기다려’ 하고, 나쁘다 싶으면 ‘안 돼.’ 할 뿐이지요.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아버지에게 더욱 다가가는 것입니다. 자식도 자꾸 다가가야 정이 들고, ‘뭐 사 달라’ 하고, 모르는 거 물어보고, 가끔 땡강도 놓는 자식이 더 친근한 법입니다. 아버지에게 말 못할 게 뭐 있고, 더욱이 부자 아버지에게 달래지 못할 게 뭐 있습니까?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부르고 기도하세요. 너무 힘들어서 말도 못하겠거든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고 울어버리세요.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놀라서 “왜 그러냐?” 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근간이며, 가장 기초지식입니다. 이 지식 위에 일생 성숙된 신앙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관계의 지식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꿀을 얻기를 원하면 꿀통을 발로 차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인격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존심하고도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열린 수도꼭지처럼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내뱉어서 상대를 기분 상하게 하고,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더는 혈기나 내고 그러는 사람은 꿀통을 발로 찬 격입니다. 인격이 발로 차이는 순간 벌이 돌변하여 인정사정없이 쏘아대는 것처럼, 감정이 상한 사람은 어느 순간 적이 되어 달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교육받은 개도 아무 때나 짖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인간관계에서의 지식은 윤리와 도덕은 물론이요, 그를 넘어서 품위와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예절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그 사람은 존망과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며, 그 주위로 사람이 꾸역꾸역 몰릴 것입니다.
지식 있는 자는 부드럽습니다. 지식 있는 자는 위엄은 있으나 위압감은 없습니다. 또한 지식 있는 자는 따뜻합니다. 우리 주님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통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를 상대로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라고 하자 모세는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고사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 그 때 하나님은 “왜 못해?” 하며 모세를 쥐어박은 게 아니라 모세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 하시며 힘을 실어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찾아가서 괘씸하다고 호통을 치신 것이 아니라 상심해있던 그를 위로하고 보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생선을 구워 조반을 챙겨 먹이시고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세 번 야단을 치셔도 부족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스하게 안으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21:17)라고 고백했고, 그는 자원하여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고 뛰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원동력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 얻기를 원하십니까? 사람은 감정의 동물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감정을 건들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백 년 된 나무를 자르는 데는 십 분이면 된다는 것을 알고, 매사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과 아량, 그리고 예절로 사람을 대해야 될 것입니다. 제가 자라는 아이들에게 잠언을 자주 읽게 하는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 안에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이 다 수록되어 있습니다. 매일 잠언을 읽으세요.
셋째, 공부해서 얻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태인 말에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자식을 도둑놈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가르쳐야 하고, 또한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은 꿈을 꿉니다. 그러나 그 꿈은 배우지 않으면 그저 백일몽에 불과하게 됩니다. 배움은 꿈에 이르는 수단이요, 목적에 이르는 다리입니다.
우리 옛말에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배워서 알면 남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우면 기업을 살릴 수도 있고, 국가를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요, 배워서 남 줘야 합니다. 국가와 사회에, 그리고 교회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잠언 19장 2절에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식이 수반되지 않는 꿈은 화로 없는 불과 같아 위험천만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아는 것이 없으면 할 일도 없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고, 아는 만큼 내 생활반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는 것이 없으면 눈 뜬 소경이요, 귀머거리입니다. 영어 모르니까 외국에 나가면 정말 눈 뜬 소경됩디다. 귀머거리 됩디다.
젊은이들은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배워야 합니다. 지금 좋은 옷 입고, 비싼 커피 마시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 돈으로 한권의 책이라도 더 사서 읽어야 합니다. 그 돈으로 기술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하고, 그 돈을 모아 여행을 하며 세계를 배워야 합니다. 놀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재산이요, 내일의 밑천이고, 성공의 발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인간관계의 지식, 배우는 지식, 이 세 가지 중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이 삼 박자가 고루 갖춰질 때 당신은 영·혼·육에 아름다운 사람, 지적향기가 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인 위에 뛰어날 것이며, 만인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교육부재현상은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다
평생직장은 없어도
평생직업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