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主敵)도 필요하다
연평도 사건 이후에 우리 국민과 특히 젊은이들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 국민 전체의 안보의식이 한층 두터워진 것이고, 북한이 주적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이 안보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이 힘들다고 회피했던 해병대의 지원자가 늘어 경쟁하는 풍경까지 연출되는 상황이 되었다.
피겨여제 김연아는 얼마 전 한 기자회견에서 “아사다가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까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사다와는 예전부터 같이 비교되고 라이벌 의식도 많이 느꼈다.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아사다 마오 역시 최근 “김연아가 있었기 때문에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적이 없으면 편안하다. 그러나 때론 적으로 인해 강하게 되고, 하나 되고, 더욱 노력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한나가 주적인 브닌나 때문에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은 일, 입다가 자기를 멸시한 자들 보란 듯이 잡배들을 훈련시켜 힘을 기를 수 있었던 일,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주적이 있다. 바로 악한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이다. 마귀와 귀신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들만 없으면 평안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마귀 때문에, 이 귀신 때문에 우리 신앙에 방심할 틈이 없고, 더욱 기도하고, 더욱 힘써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부러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상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그러니 적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지 말고, 적 덕분에 내가 발전하고, 내가 노력한다고 생각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