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71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감사는 우리 인생의 성장촉진제다 (딤전1:12~17)

717호 · 2013-11-22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익히 알고 있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범사(凡事)’는 ‘모든 일에’, ‘어떤 형편에서든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라는 뜻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시겠지요?

우리 크리스천들이 습관화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라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엄청난 은혜를 값없이 받았기 때문에 인생사에서 벌어지는 범사, 즉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아들 압살롬을 피해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라고 감사했고, 바울 역시 그가 주리고 헐벗고 매 맞으며 세상 만물의 찌꺼기처럼 취급을 받으면서도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2:13)라고 감사했습니다.

추수감사절도 범사에 감사했던 청교도들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국 제임스 1세의 종교탄압이 극심해지자 102명의 청교도들은 종교의 박해를 피해 영국 땅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1620년 9월, 7개월 동안 노동으로 사들인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출발합니다. 그들은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 거센 풍랑과 싸우며 65일 동안 망망대해를 지나 신대륙 아메리카에 발을 내딛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풍토병과 인디안 원주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해 겨울 동료 44명이 죽는 아픔을 견뎌야했습니다. 다행히 이듬해 봄, 인디언 추장으로부터 감자와 옥수수 종자를 얻어 농사를 지었고,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첫 수확한 것으로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고, 많은 것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배고픔과 풍토병, 인디언의 추격 등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새 땅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것은 감사의 기도였고, 교회를 세운 일입니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첫 수확물로 감사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일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를 돌아볼 차례입니다. 우리도 범사에 감사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두발 달린 동물이다’라고까지 했겠습니까? 우리 주님도 말세에는 사람들이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1~2).

자고로 감사하는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사가 몸에 밴 사람은 시편 136편의 말씀처럼 아침에 해가 뜨고 밤에 달이 뜨는 것에도 감사합니다.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일할 자리가 있는 것도 감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강에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자들은 해가 뜨겁다고 불평하고, 밤은 어둡다고 불평합니다. 반찬이 없다고 불평하고, 일하는 게 힘들다고, 남들처럼 자가용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애굽 군대가 쫓아오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내몰았느냐고 불평했고(출14:11), 마실 물이 없다고(출15:24),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성을 높이는(출16:2) 등 그들의 불평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게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7~28).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탐지한 날수, 즉 40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사십년간 광야에 거하게 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자들이 광야에서 죽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민14:29~3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10).

제가 부득불 자랑할 것이 있다면 목회 28년을 걸어오면서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라고 표현할 만큼 제 목회는 고난과 핍박과 모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교계에서 제명을 당하고, 어머니로부터 집에서 내쫓기며, 가족이 떠나는 등 안팎으로 견디기 힘든 세월이 제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범사에 늘 감사했습니다. 왜요?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으니 감사하고, 더욱이 당신의 거룩한 종으로 부르사 능력을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나타내게 하심이 너무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하시고, 저를 통해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케 하셨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인생의 성장촉진제입니다. 감사는 인생이 쭉쭉 뻗어나가게 하고, 많은 열매가 맺히게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셔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명 만이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그리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라고 하셨습니다.

아홉은 고침을 받고도 감사를 잊은 채 제 길로 갔지만, 이방인 한 사람 만이 감사하여 사례했더니 감동하신 예수님이 그를 육신의 병에서 구원하신 것뿐 아니라 영적인 구원까지 더하신 것입니다.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이 감사는 인간사 속에도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라는 말씀을 잘 생각해 봅시다. 누가 내게 직분을 줬는지, 누가 나를 낳았는지, 누가 일을 할 수 있게 해줬는지 생각하면 교회에, 부모에게, 회사에, 국가에 감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더 얘기해볼까요? 누가 나에게 지식을 함양시켜줬는지, 누가 가정을 이루게 해줬는지, 누가 나에게 사랑을 줬는지, 누가 신입인 나를 가르쳐줬는지 생각하면 학교 선생님께, 내 아내에게, 내 남편에게, 내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고로 깨달을 때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처를 범한 후 나단의 충고를 듣고 깨달았듯이 말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인생과 신앙의 항암제요, 방부제며, 소독제입니다. 감사하는 삶은 늘 악한 것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소독하며, 썩지 않도록 하며, 걸림돌이 없도록 제거하는 것이니 곧 만사형통의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서든지, 무슨 일에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이것이 성공적인 삶의 비결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시100:4). 할렐루야!

감사를 실천하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자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71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Q & A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