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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우리 모두 협력의 구도로 가자 (고전13:1~13)

711호 · 2013-10-11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17:14),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20:3).

모두 ‘다투지 말라’는 성경말씀입니다. 다투면 불행할 뿐 아니라 공멸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싸울 때 ‘너 죽고, 나 죽자’는 말을 잘합니다. 죽을 바에는 같이 죽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이 진짜 맞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싸우면 진짜 둘 다 죽습니다.

한서(漢書) 전국책(戰國策)에 방휼상지어옹득리(蚌鷸相持漁翁得利)라는 말이 나옵니다.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싸우면 지나가던 늙은 어부만 이익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침 햇살이 좋아 입을 벌리고 있는 조개를 도요새가 부리로 쪼니 조개가 도요새의 입을 꽉 물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엉켜 싸우고 있을 때, 마침 어부가 이를 보고는 도요새와 조개를 잡아 망태 속에 잡아넣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로, 이 말을 줄여 ‘어부지리(漁父之利)’라고 합니다. 서로 싸우면, 서로 분쟁하면, 서로 대결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말입니다.

노사가 서로 싸우면 경쟁업체만 좋은 일시키는 겁니다. 남북이 싸우면 분명 이득 보는 나라가 있습니다. 여야가 자꾸 싸우면 얼씨구나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싸웁니까? 진정 누구를 위한 싸움이고, 누구를 이롭게 하는 싸움입니까? 뱀도 자기네끼리 싸울 때는 독을 품지 않고, 말도 싸울 때 머리로 밀망정 절대 치명적인 뒷발질은 안한다고 하는데, 왜 한 솥 밥 먹는 노사가 싸웁니까? 왜 한 배를 탄 사람들끼리 다투고, 왜 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끼리 대립하고, 한 가족끼리 대결합니까?

어부지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도 생깁니다. 여야가 싸우면 민생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애꿎은 국민만 힘들어지고, 노사가 싸우면 그 파급이 영세 협력업체들에게까지 미칩니다. 부부가 싸우면 자녀들이 죽을 맛입니다.

여러분, 싸워서 좋을 게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함께 거할 때, 그들의 소유가 많아지다 보니 아브라함의 가축을 기르는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창13:8).

피붙이끼리 싸우지 말자, 싸워서 좋을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창13:9)하며 싸움을 피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말씀입니다.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막3:24~25).

저는 남북관계가 자꾸 대치국면을 맞는 게 아쉽기만 합니다. 물론 북한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자꾸 만들고,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는 것은 삼척동자도 압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조금만 더 지혜로우면 대결과 대립이 아니라 협력의 구도로 이끌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있어야 베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없으면 자격지심이 발동하고, 없으면 괜히 심통 나고, 괜히 곡해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북한이 딱 그 짝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가진 자, 힘 있는 자, 여유 있는 자가 먼저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주 쪽에서, 정권을 잡은 쪽에서, 북한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더욱 사랑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협력으로 가는 레일은 바로 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기에 싸움이 없고, 사랑은 온유한 것이기에 다투지 않습니다.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기에, 자랑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지 아니하기에 다투지 않습니다. 또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기에 싸움이 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기에 절대 다투지 않습니다(고전13:4~7). 그래서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요13:34).

제가 늘 말하는 파도와 모래 이야기 아시지요? 파도가 몰려올 때 바위는 맞받아쳐서 싸우니까 서로 상처를 내지만, 모래는 몰려오는 파도를 다 받아주며 성난 파도를 잠재웁니다. 먼저 손을 내미십시오. 먼저 참아주십시오. 먼저 사랑하십시오. 모래가 되십시오. 그러면 대립이 아니라 화목하게 되고, 협력하게 될 것입니다.

줄다리기를 해보셨습니까? 줄다리기는 절대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협동하고 협력해야 이길 수 있는 경기입니다. 초일류기업을 꿈꾸십니까? 노사가 하나 되어 영차영차 할 때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입니다. 일등 국가를 꿈꾸십니까? 여야가 하나 되어 영차영차 할 때 선진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십니까? 가족이 하나 되어 영차영차 할 때 가정이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협력은 성장이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대립과 대결은 멸망이요, 불행입니다. 바다에 사는 게는 물고 뜯는데 선수입니다. 게를 큰 그릇에 담아놓으면 밖으로 나오려고 기어 올라갑니다. 그러면 밑에 있는 게가 다리를 이용해서 올라가는 게를 잡아 밑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놈이 또 끌어 밑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게를 두 마리 이상만 넣어 놓으면 거의 도망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서로 물고 뜯기 때문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 게와 같은 자가 누구입니까?

이솝 우화 중 네 마리 황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함께 하는 황소 네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황소들은 풀을 뜯어 먹을 때도, 쉴 때도 언제나 함께 해서 어떤 것들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노리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사자였습니다. 사자는 황소 주위를 돌며 호시탐탐 황소를 노렸지만, 네 마리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조금 뒤쳐진 황소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저네들이 그러는데 네가 이 중에서 제일 힘이 없다며?” 그러자 이 말을 들은 황소가 기분이 상했습니다. 사자는 다른 황소에게도 다가가 “저 황소들이 그러는데 네가 힘이 제일 달린다며?” 이 말을 들은 황소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결국 황소들은 한 마리씩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싸우게 하고,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원래 사람들 사이에 쐐기를 박아 다투게 하고 갈라지게 해서 결국 망하게 하는 놈입니다. 마귀에 사로잡혀 오직 다윗과 싸우려고만 했던 사울의 삶을 보십시오. 그의 결국이 어떠했는지 유심히 보십시오, 그런데도 마귀의 궤계에 매여 대립과 대결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십자가, 곧 플러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 더해지는 삶, 협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2장에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명의 친구를 보십시오. 서로 협력하니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친구의 병도 고치게 되지 않습니까? 네 명이 협력하고 협동하니 사람이 많은 중에도 지붕을 뚫는 기지를 발휘하여 예수님 앞에 친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외줄보다 삼겹 줄이 나은 법입니다(전4:12). 이제 대결의 구도를 버리고 협력의 구도를 택하시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대결은 멸망과 불행이요

협력은 성장과 행복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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