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마와 명견
잘 짓는다고 명견(名犬)이 아니다.
도둑을 잘 잡아야 명견이고, 짖을 때 짖고 짖지 말아야 할 때 짖지 않아야 명견이다. 아무 때나 짖어대면 시끄럽기만 하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많이 먹으면 체하고, 좋은 꿀도 많이 먹으면 해로운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잘 달린다고 명마(名馬)가 아니다. 주인이 서라고 할 때 설 줄 아는 말이 진정 명마다.
명 설교자는 설교만 잘하는 자가 아니다. 설교한 것을 실천하는 목사라야 하고, 최고의 성도 역시 말만 잘하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성도라야 한다.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여 ‘온유한 자가 이 땅에서 축복을 받고, 정직하고 진실된 자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설교를 하셨고, 모두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목사님이 한 달 내내 똑같은 설교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장로회에서는 긴급회의를 열었고, 목사님을 찾아가 조용히 나가줄 것을 종용했다. 목사님은 그러겠노라 하고는 주일 고별설교를 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도 똑같은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계속 같은 설교를 한 것은 여러분이 설교한 것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라는 목사님의 일언(一日)에 장로와 성도들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렇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 없는 몸 같은 것’이라고 야고보 선지자가 말했다(약2). 나도 ‘배움의 끝은 실천’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고, 옛 성현들도 배움은 ‘앎과 행함을 합친 이름’이라고 했다. 신앙체험은 말씀을 믿고 움직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땅에서 잘 되고 싶은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을 실천하라.
열매 없는 나무가 무명하듯, 행함 없는 믿음이 헛것임을 알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