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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과 틀린 것은 딴판이다 (단6:1~28)

703호 · 2013-08-16

우리나라 말에는 그 뜻이 애매모호하여 혼용되는 단어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국어공부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교회 안에서든, 세상에서든 이 낱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오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오늘 바로 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첫째가 ‘사정’과 ‘부탁’입니다. 사정(事情)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남에게 말하고 무엇을 간청하는 것’이고, 부탁(付託)은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거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내린 해석은 이렇습니다. ‘사정’이란 높은 사람에게 간청하는 것이고, ‘부탁’이란 믿을 만한 사람이나 충성된 자에게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저는 절대 교회 안에서 사정하지 않습니다. 주의 종들에게나 장로를 비롯한 직분자들에게 사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일은 곧 주님의 일인데, 그것을 사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왕조시대에 왕에 관한 일을 아랫사람에게 시킬 때 사정했을 리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일을 해달라고 사정한다면 말이 됩니까? 부탁하는 겁니다. 믿을 만한 사람, 충성된 자에게 일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면 부탁을 받은 자는 ‘황공무지로소이다’ 해야 옳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영적 아들에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딤후2:2)고 했고, 많은 믿음의 선친들도 교회나 제자들에게 사정하지 않고 오직 예수 이름으로 부탁만 했습니다. 더불어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교회 일은 사정할 일이 아닙니다. 제가 청소년 수련회 때나 산상집회 전에 필요한 물품에 대해 광고합니다. 부식이나 간식, 버스대여비 등 광고를 할 때 사정하지 않습니다. 들을 만한 자들에게 부탁할 뿐입니다. 구역 안에서도 ‘봉사해 달라’, ‘구역장 맡아 달라’고 사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맡길 만한 자에게 부탁하면 됩니다. 저는 그동안 충분히 가르쳐왔습니다.

둘째, 차별과 구분입니다. ‘차별(差別)’이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는 것’이고, ‘구별(區別)’이란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갈라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 산상집회 때 어떤 사람이 제게 ‘사람 차별한다’고 말하던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호텔 사용문제 때문인데, 그건 차별하는 게 아니라 구분하는 것이라 말해야 옳습니다. 규율 상 예약자만 호텔에 들어갈 수 있는데 제가 어떡합니까? 구분했을 뿐입니다. 그래야 질서가 잡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집회가 끝나면 일반 숙소에도 에어컨 시설 다 해드릴 예정이니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땅끝예수전도단 회원의 초대로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그 때 동행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테이블이 나뉘게 되었는데, 제 테이블과 다른 테이블의 메뉴가 달랐나봅니다. 목사인 저를 좀 더 신경 쓴 거겠지요. 그런데 한창 식사를 하는 중에 저쪽 테이블에서 농담조의 말이 제 귀에 들렸습니다.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인가?”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어디를 가든 모든 사람과 동일한 대접을 원한다고 단에서 공포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차별은 안 됩니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실업인 선교회를 만들지 않는 것은 차별화될까 해서입니다. 있는 사람들끼리 뭉치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상처받을까봐 다른 교회에 다 있는 실업인 선교회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2:1~9).

그러나 구분은 해야 합니다. 함께 일할 자와 도울 자를 구분하고, 문 밖에서 만나야 할 사람과 거실까지 들어올 사람, 그리고 안방까지 들어올 사람은 구분해야 합니다. 마치 주님이 변화산상에서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회당장인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가신 것처럼 말입니다.

셋째,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다른 겁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틀린 것이 다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로 틀리면 바로 잡아야 하지만, 다르면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처음 갔을 때, 원주민 마을에 갔는데 거기서 가슴을 드러내고 춤을 추던 원주민 처녀들을 보고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틀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교단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왜냐? 그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교리와 다르다며 ‘틀렸다’, ‘이단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저와 그들이 다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니엘도 다른 자들과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삼십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진다는 금령에 수긍했지만, 다니엘은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사자굴에서 건지셨고,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을 무색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틀린 것이 다 다르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종교와 우리는 틀립니다. 그것은 다르기 때문에 틀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기에 틀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에 타협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넷째,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다릅니다. 못하는 것이나 안 하는 것이나 결과는 같습니다. 그러나 못하는 것은 능력이 안 돼서, 형편이 안 돼서 못하는 것이지만, 안 하는 것은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게을러서 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 법,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그러므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싶습니까? 이제라도 핑계와 변명을 버리고 모든 일에 도전해봅시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사정과 부탁이 다르고, 차별과 구분이 다르며,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딴판이고,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이 다릅니다. 주의 일에 사정하지 말고 부탁하고, 교회 안에서 차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구별은 해야 하며,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 말하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신앙에는 타협이 없다는 것, 그리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임을 알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복이 당신에게 임할 것이고, 당신의 삶이 치료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못하는 것이냐

안하는 것이냐

차별은 말되

구분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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