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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호 목차 › 성도들의 간증

하나님은 저를 포대기에 싸서 키우셨어요!

703호 · 2013-08-16

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제가 세 살 때 이혼하신 후 외할머니,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면서 월세 방을 전전하다 주변 주민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임대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늘 가난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어깨에 지고 살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고, 또래의 아이들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만져보지도 못하였고 가지고 싶어 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분리하여 수용했을 때에도, 우등상을 빼앗길 때에도 제게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밝고 건강한 모범생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세 살 때 우리 목사님을 만나 일찍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고,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이 제 아버지인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폭 싸매 키우사 폭력과 음주가 난무하는 척박한 주변 환경에서 어떤 위험도 겪지 않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육의 아버지가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어린 제게 하나님은 진정 저를 직접 양육하시는 아버지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아노학원을 다닐 수 없는 저에게 배우지 않고 들리는 대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하셨고, 어떤 사교육도 받을 수 없는 저에게 집중력과 이해력을 허락하사 배움을 즐기도록 해주셨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매일 등교하는 제 머리에 손을 얹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 되지 말고, 귀감의 대상, 선망의 대상, 존망의 대상이 되며 유학의 길이 열릴지어다.”라고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진정으로 고백하건대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불모지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제게 늘 꿈이 있었던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회의 아픈 부분을 일찍이 경험하여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사랑을 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재능과 열정이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자 장학재단을 세우는 꿈을 키우게 되고, 하나님이 주신 음악적 재능으로 성공해서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는 저를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고2 여름에 비로소 작곡과 입시를 위해 처음으로 피아노학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다 고3 때 버스에 의해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됐습니다. 세 번의 대수술과 6개월의 입원, 1년의 깁스 착용 끝에 발의 재건은 실패했지만 저는 이때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인내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퇴원 후 단 2개월 동안의 입시준비에 역사하셔서 원하던 경희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하도록 하셨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여 직면한 현실은 어릴 때보다 심했습니다.

돈 있는 선배들은 유학을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제게 ‘현실에 꿈을 맞추지 말라’고 조언해주신 전도사님도 계셨지만, 저는 계속해서 좌절해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기도에 의해 심어져있던 유학의 꿈은 잊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작곡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하나님께 묻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이론전공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이자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한 학기가 지난 후 하나님께 물어 장학금 제도가 있는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전공 학부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에서 하나님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어려서부터 억눌려 있던 자아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러다 장학재단 설립 때를 대비해 복수전공으로 시작한 사회복지학에 크게 흥미가 생기는지라 2011년, 하나님께 확답을 듣지도 않고 사회복지로 진로를 정하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그분의 뜻이 아님을 6개월 만에 알고 접었습니다. 스웨덴 교환학생을 신청하여 합격하였지만, 이후 저는 목표를 상실한 사람처럼 고뇌와 번민으로 매일을 살았습니다. 저는 사회를 돌보는 꿈을 꾸지만 가난한 가정형편은, 세상은 어서 돈을 많이 주는 대기업에 취업하라고 하는 것 같았고, 취업을 해야 한단 생각에 가본 취업박람회에서 엄청난 대우를 해주는 외국계회사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꿈을 잃은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저희 집에 보내셨는데 제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셔서 성탄절 자선음악회를 기획하셨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연주하고 후원금을 받았고, 또한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명목으로 장학금들을 채워주셔서 2012년 1학기 스웨덴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2월에 독일에서 있은 한인유학생, 이민자 수양회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을 보았고, 또한 많은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저는 그 속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제게 어려운 환경을 허락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잃었던 꿈이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 유학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마지막 학기와 유학준비를 병행하는데, 얼마나 세심한 부분들까지 준비해놓으셨던지 많은 비용이 드는 준비과정에 저는 한 푼도 돈을 들이지 않고 입학원서를 냈습니다. 2013년 2월 서울대학교를 단과대학 석차 1위로 졸업하였고, 불안한 마음에 지원했던 두 개의 해외인턴에도 합격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2월에 열흘 간 새벽기도 작정 후 뉴욕대학교(NYU)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인턴을 하지 않은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좋은 안과의를 만나게 하시어 시력교정술을 무료로 받게 해주셨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국비 유학생에 합격시키어 학비와 명예까지 선물해주셨습니다. 지방자치단체를 들어 후원금도 주셨습니다. 기도원 산상집회에서는 사고를 당한 발에 늘 있던 통증도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또한 가깝게 지내는 장로님을 통해 아무 연고도 없는 뉴욕에서 머물 저렴한 숙소와 도울 자들까지 예비하셨습니다. 가슴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영혼에 대한 사랑을 품고, 부르신 곳에서 최선을 다한 것뿐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큰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이제 뉴욕으로 가는 제 마음은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만이 온전히 드러나기만을 원합니다.

사랑하는 총회장 목사님과 교단 목사님들, 호산나 성가대, 서울 대학부, 문서 선교팀 이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인천 예수중심교회 김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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