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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귀명창이 명창이다 (출18:1~27)

700호 · 2013-07-26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옛노래입니다.

저는 노래 가삿말이 ‘왕곰이 집을 짓는’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왕거미 집을 짓는’이더군요. 자주 듣고 자주 불렀는데도 제대로 못들은 겁니다.

여러분, 귀명창이 되어야 명창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이사야 선지자가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43:8)고 했고, 예수님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23)고 하신 것은, 경청할 줄 아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경청(傾聽), 귀 기울여 듣는다는 뜻 아닙니까?

오늘 본문은 출애굽을 인도한 모세의 가족이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미디안 땅을 지날 때, 그의 장인이 사위의 소식을 듣고 딸 십보라와 모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와서 보니 양이나 치던 예전의 사위가 아니었습니다. 장정만 60만이요, 부녀자를 합해서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솔함은 물론이고, 영적 지도자로서 그의 위엄이 대단했습니다.

더욱이 그 대단한 사위가 겸허하게 장인 이드로에게 출애굽을 주도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행적을 소개합니다. 이드로는 사위 하나는 잘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위를 보니 얼굴이 핼쑥하니 피곤이 절어 있었습니다. 보기도 아까운 사위가 왜 그런가하고 유심히 살펴봤더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상담하고 재판하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 겁니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부터 대사까지 모세를 만나려는 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위만 지친 게 아니라 백성도 지쳐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성은 백성대로 그 순차를 기다리느라 거의 탈진상태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장인 이드로는 안 되겠다 싶어 모세에게 조언을 합니다.

“여보게 사위, 나에게 미디안 족속을 통치해본 경험이 있지 않나. 내 경험에 의하면 지금 자네는 아주 비능률적으로 일하고 있네. 이대로 가다보면 자네와 백성 둘 다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네.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이렇게 하게. 먼저 하나님의 모든 율례와 법을 잘 기록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그리고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고 흠이 없는 사람, 불의한 일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백성들 위에 십부장과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으로 세우게. 그리하여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백성들을 재판하게 하고, 가장 어려운 문제만 자네에게 가지고 오게 하게.”

모세는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출18: 24). 이것이 모세가 진정한 영장(英將)인 이유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출해내라는 하나님의 명을 직접 받은 지도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신을 섬기는 장인의 말에 코웃음 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인의 말을 경청하고 합당하게 여겨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명실 공히 훌륭한 행정, 사법조직을 갖춘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장군을 보십시오. 그는 유능한 장군으로 국왕과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구국공신입니다. 그러나 갑옷 속에는 진물이 질질 흐르는 나병환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여종 하나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만나면 나을 수 있다는 희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아람왕의 소개장을 가지고 부푼 꿈을 안고 엘리사를 찾아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엘리사는 얼굴도 내밀지 않고 요단강 물에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합니다. 그것도 사환을 통해서요. 맨발로 뛰어나와 넙죽 절하며 대단한 처방이라도 내려줄 줄 알았던 나아만 장군은 심한 모욕감에 다 쓸어버리고 회군하려 했습니다. 이 때 옆에서 지켜보던 종들이 나아만 장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왕하5: 13). 나아만 장군은 종들의 말을 크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니 어린아이 살결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귀명창이 되면 명창이 될 수 있습니다. 들을만한 귀를 가지고 있으면 영·혼·육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귀가 꽉 막힌 자들이 있습니다. “소귀에 경 읽기”라고 말들 하지 않습니까? 교만과 아집, 욕심에 가득해서 귀가 막힌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그들이 나중에 실패하고 나서, 망하고 나서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더니!” 그러나 아닙니다. 개는 짖었는데 당신이 귀가 막혀서 못들은 겁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 많습니다. 귓구멍이 막힌 사람들 말입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라못을 놓고 싸우려 할 때, 미가야는 아합에게 전쟁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되레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전쟁에 나가더니 죽고 맙니다. 귓구멍이 막혀서 그런 겁니다(왕상22).

당대에 최대 제국 바벨론을 건설한 느부갓네살 왕. 하나님은 꿈을 통해 그의 교만함을 나무라고,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통해 해몽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말에 콧방귀를 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느부갓네살은 사람에게 쫓겨나서 7년 동안 들짐승처럼 살았습니다(단4).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은 분별력이 없어 노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젊은이들 말에 놀아나더니,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왕상12).

예수님에게 손대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무시했던 빌라도,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성별되어 포도주와 독주를 삼가고, 이방여인을 취하지 말라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머리털이 밀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삼손,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가볍게 여긴 사울…. 이들이 모두 귀가 막한 자들입니다.

저도 우리 성도들에게 자주 조언해줍니다. ‘그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그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그 길로 가지 마라.’ 이렇게 조언해줄 때 좀 들으면 좋으련만, 안 듣고는 망하고, 이혼하고, 실패해서 울면서 옵니다. 안타깝지만 제가 그 이상 어떻게 도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은 우리의 거울입니다(고전10:6). 거울을 보고도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다듬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첫 닭 우는 소리에도 깨달은 베드로처럼,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한 다윗처럼 귀를 열어 들으세요. 또한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말을 듣고 순종한 룻처럼 귀명창이 되어야 합니다.

공자가 길을 가다가 길가에 똥을 누는 자를 보더니 크게 나무랐습니다. 그런데 길 한 복판에 똥 누는 자를 보고는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제자들이 왜 그런지 묻자 공자 왈, “가능성이 없는 놈에게는 충고도 아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도 말씀하십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잠9:8).

누군가 당신에게 충고나 쓴 소리를 하는 것은 먼저는 당신을 사랑해서이고, 둘째는 당신에게 여지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를 열고 들을만한 귀가 되십시오.

여름산상집회 때 기도원에 가면 성전 벽에 있는 귀 모양의 조각상을 꼭 보십시오. 거기에 무엇이라고 쓰여있는지 보고 그대로 행하십시오. 할렐루야!

밥이 육체의 보약이듯

충언은 영혼의 보약이다

천하를 다스리려 애쓰기보다

먼저 나를 다스리기에 힘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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