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기억하시기를 원하는 삶 (느13:6~31)
느헤미야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수산 궁에 있던 유대인입니다.
후에 그는 예루살렘 총독이 되었는데, 예루살렘이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성벽이 훼파되고 성물들이 소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너무 마음이 아파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 아닥사스다 왕에게 나아가 사실을 고하고, 왕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 성곽을 52일 만에 재건합니다.
그 과정과 내용이 느헤미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서를 읽다보면 느헤미야가 일을 진행해가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곳곳에 나오는데, 그 기도의 내용이 저를 크게 감동시켰기에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곽을 건축하고 12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에스라와 함께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왕의 재가를 얻어 예루살렘에 갔는데, 그 사이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 엘리아십이 이스라엘의 대적 도비야에게 성전의 큰 방을 내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물론, 레위인들에게는 월급을 주지 않아 그들이 각처로 도망쳤으며, 안식일도 범하고 이방여자들과 결혼하는 등 그야말로 문란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다시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난 혼혈족인 암몬과 모압 사람을 분리시켰고, 암몬 사람과 도비야를 성전에서 추방했으며, 성전에서 주는 월급을 조정했고, 안식일을 엄수시켰으며, 잡혼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바로 30~31절, “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입니다. 무슨 기도인가 하면, “하나님, 제가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습니다. 보셨지요? 이걸 잊으시면 안 돼요. 그리고 이 일을 한 나를 아껴보시고, 복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야 합니다.”라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기도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느헤미야서 5장에 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12년 동안 머무는 동안 민폐는 고사하고 총독의 녹까지 받지 않았으며, 자비로 유대인 150인을 먹이고, 또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등 청렴결백하게 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느5:19)라고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너무 당당하고 멋집니다. 하나님이 기억해주시는 삶을 산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느헤미야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히스기야도 이런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재위 14년이 되었을 때, 밖으로는 산헤립이 침공했고, 자신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사38:1)고 통고합니다. 벼랑 끝에 선 히스기야는 이 말을 듣자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여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사38:3). 이에 여호와께서 선지자 이사야가 궁궐을 나가기도 전에 마음을 돌이키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38:5~6)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표로 해 그림자가 뒤로 십도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도대체 히스기야가 이렇게 하나님께 당당히 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연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럴 수 있을까요? 히스기야는 즉위하자 곧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산당을 비롯한 모든 우상을 제거했습니다(왕하18:1~7). 그는 아하스에 의해 닫혀 있던 성전의 문을 열고 이것을 수리했고, 또 유월절을 부활시켰습니다. 또 그는 모세의 놋뱀이 우상 예배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알고 그것도 제거했습니다.
그런 그가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당당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의 목전에 선히 행한 자신을 추억해달라고. 그는 자신의 공적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 행하였음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아뢰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도 이런 당당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추억하면 흐뭇해하실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되레 하나님이 지난 일을 기억하실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요?
저도 하나님 앞에서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몇 해 전인가, 저를 위해 주일마다 밥을 해주는 권사가 중환자실에 심장병으로 쓰러져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침 그 때 저는 지방 집회에 가는 중이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먼저 그곳에 달려갔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그 권사에게 안수하며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딸을 살려주십시오. 이 딸이 종을 위해 수고한 것을 주님이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꼭 살려주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간곡하게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그 딸을 살리셔서 지금도 저에게 밥을 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고넬료의 구제와 그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신 하나님(행10:4), 과부 두렙돈을 보신 하나님(눅21:2),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른 여인을 기억하신 하나님(마26:13)은 우리도 다 보고 계시고, 모두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 게 있어야지요? 뭐 내놀게 있어야지요? 돌아보니 걸음마다 죄뿐이니 말입니다. 걱정되십니까? 두렵고 부끄럽습니까? 그러나 염려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멋지고 감사한 이유는 안 좋은 과거, 나쁜 과거, 죄로 얼룩진 과거는 다 잊어주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43:18).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비록 주홍 같을지라도 눈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역죄인 사울이 대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딤전1:12~13). 그러기에 저 또한 죄인 중의 괴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복음을 전하며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과거의 행한 선한 일을 잊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꿈 해석을 술 맡은 관장이 잊은 것처럼(창40:23), 왕 암살을 막은 모르드개의 일이 잊힌 것처럼(에2:21~22). 그러나 하나님은 좋은 일은 다 기억하고 계시다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나 평소에 아무런 저축이 없으면 위급할 때 찾을 것이 없는 것처럼, 평소에 하나님 앞에 선한 일을 해놓지 않으면 나올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의 일에 자원하고, 기뻐하며, 최선을 다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당신을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억된바 되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 같이 그들의 자녀가 효자였고, 모범생이었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그들이라고 다 그랬겠습니까만, 메달을 따고 나니까 예전의 안 좋은 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동일합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이 추억하실 수 있는 일을 하면, 지금부터 사랑하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살면, 하나님은 과거의 우리는 잊으시고 지금의 일만 추억하시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삶을 살아봅시다. 할렐루야!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함이요
당당함은 믿음의 행위이다
평소에 부지런히 저축해야
어려울 때 찾아 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