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없으면 오해를 낳는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다른 형용사를 찾을 수 없어서 ‘이처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처럼’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주실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그 절정에 이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렇게 다 청산하셨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아프고, 가난하고, 죄와 저주 속에 살고 있는 걸까요? 문제가 있으면 원인도 있기 마련,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요12:46).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에 누가 우리를 괴롭히는지, 우리 것을 누가 도적질해 가는지 몰랐습니다. 왜 넘어지는지, 왜 망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빛이신 예수님이 오시니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바로 원인은 귀신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과 천사, 사람, 이렇게 세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던 천사장 루시엘이 그만 교만해져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비겨보려고 하다가 이를 아신 하나님이 루시엘과 함께 반역을 꾀한 삼분의 일의 천사를 영적 감옥이라는 흑암, 즉 음부에 가두어버립니다(사14:12~14). 그가 바로 하나님께 대적한 자로 사단(루시퍼)이요, 마귀입니다. 그리고 루시엘과 함께 반란에 동참하였다가 타락한 천사들이 바로 악령들입니다.
그러면 귀신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일곱 귀신을 비롯해 군대 귀신 등 많은 귀신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귀가 먹고 벙어리가 된다는 것, 그리고 눈이 멀고 꼬부라졌다는 것으로 볼 때 육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5절에는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쓰여 있습니다. ‘벙어리 되게 하고 귀 먹게 만든 귀신아’라고 하지 않으시고, ‘벙어리 되고 귀 먹은 귀신아’라고 하신 것은 그 귀신 자체가 벙어리고 귀 먹은 존재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천사, 사람 중에 육체를 입은 것은 사람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신자(信者)와 불신자(不信者)로 나눠집니다. 신자는 죽은 다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낙원을 거쳐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불신자는 음부에서 무저갱을 거쳐 지옥으로 간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음부라는 곳이 바로 마귀가 있는 곳인데, 마귀는 바로 이 땅에 있습니다. 그 증거가 마태복음 4장에 있습니다.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는데, 마귀가 예수님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8~9)’고 합니다. 곧 이 땅이 음부요, 마귀의 왕국이라는 겁니다. 고로 이를 종합해보면 예수를 안 믿고 죽은 불신자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귀신이 믿지 않는 자의 사후의 영인 것은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고전10:20)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믿지 않고 죽은 영이 귀신임을 입증해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음부라 육체를 입지 않으면 뜨거워서 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에 음부에 간 부자가 낙원에 있는 나사로에게 물 한 방울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어떻게든 인간의 육체 속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8장 32절에 인간의 육체에서 나온 귀신이 돼지 떼 속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모든 병의 원인은 귀신입니다. 현대의학은 병의 원인이 균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병의 원인은 귀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대 최고의 의사였던 누가도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해 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눅4: 40~41). 의사인 누가가 보니 각색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 나오는데, 예수님은 이를 하나같이 귀신을 쫓아 고치셨습니다. 누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좇았고, 마침내 불멸의 명작 누가복음을 우리에게 남긴 것입니다.
귀신은 전신이 사람인고로 자기가 이 땅에 살 때 가지고 있던 인격 그대로의 모습으로 역사하고, 자기 죽은 모습 그대로 죽이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귀신은 자기가 자살했으면 자살하게 만들고, 자동차 사고 나서 죽었으면 사고 나게 합니다. 암으로 죽은 귀신은 암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 사랑을 확증하신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임금이 마귀인 것을 알기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늘의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권능은 권세와 능력으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마28:18).
그런데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이 그 권세와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을 사용하면 우리도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악한 마귀와 귀신들을 추방할 수 있고, ‘예수 이름’을 사용하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 있는 것들이 우리 앞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은 곧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예수 이름을 소유하고 있고, 예수의 이름은 빛과 같아 어두움의 주관자, 귀신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는 남녀노소, 유·무식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든지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한 시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한 시간 기도한 만큼의 능력이 나타나고, 세 시간 기도한 사람에게는 또 그 만큼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천원의 가치와 만원의 가치가 다르듯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누가복음 22장 39절에 “나에게는 기도의 습관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를 제공하는 원인이 크다면 기도 또한 깊이 들어가야만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간이 마귀에게 먹히고 난 후, 마귀는 합법적으로 귀신을 우리에게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우리의 육체를 자신의 집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마12:4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이 악한 마귀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마귀는 우리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준 권세 있는 새 교훈이요, 특권입니다(막1:27).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당신에게 임할 것입니다(마12:28). 할렐루야!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 없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떠나간다
아무리 거미줄을 없애면 무엇하랴
거미를 없애야 거미줄이 없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