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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부활의 영광을 맛보려면 전도하라 (막16:1~11)

684호 · 2013-04-05

회교의 아메디야(Ahmediyya) 종파의 창시자인 굴람 아메드(Gulam Ahmed)는 그의 임종 침상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너희가 기독교에 치명타를 날리기 원한다면 직접적으로 부활을 공격하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파괴하라. 그러면 그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는 결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시켜라. 그러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신앙, 이것이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초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다시 사신 예수님을 가리켜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이는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도 동일하게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4~5).

사람들은 제게 말합니다. “왜 그렇게 쉬지 않고 세계로 나가냐?”, “왜 그리 멀고 위험한 곳에 가냐?”고요. 그 대답을 저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대신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온갖 위험을 다 무릅쓰면서도 쉬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 여행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위험과 고난을 겪었는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 27).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은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을까요? 그 답은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 있습니다.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무슨 말인가 하면 ‘만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놀지, 무엇하러 이런 일을 하겠느냐? 그러나 부활의 소망과 확신 때문에 그런 온갖 위험과 고난도 다 무릅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 역시 부활이 없다면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몸을 혹사하면서 세계로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축복만 있다면 절대로 복음을 위하여 사지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부활이 있기에, 또 부활 후에 받을 상이 있기에 이 소식을 들고 불철주야, 동분서주 하는 것입니다. 이번 필리핀 집회만 해도 방해세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협박, 공갈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가는 것은 부활을 믿기 때문이며, 죽어도 부활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영존체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수한이 차서 죽으면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와 믿지 않은 자의 부활의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다니엘서 12장 2절의 말씀입니다. “땅의 띠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곧 ‘땅의 티끌’이란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죽은 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영생을 얻는 자’는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신앙인들을 일컫고, 그와 반대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들은 이 땅에서 불신앙의 삶을 산 사람들을 말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곧 우리의 행위, 예수를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에 따라 ‘영생을 얻는 생명의 부활’이냐, ‘수욕을 받아 영원히 부끄러운 심판의 부활’이냐로 언도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우리는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이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복음을 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격의 부활로 인하여 믿지 않는 자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부활한 우리는 인격적으로도 부활해야 합니다. 사울이 완전히 다른 바울이 되었듯이 적당히 개량된 존재가 아니라 전혀 다른 내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혈기 많고, 우유부단했던 베드로는 인격의 부활을 이룬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4~7).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죄와 악을 이기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 또한 세상의 모든 죄와 악을 멀리하고, 세상의 쾌락을 배제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곳을 밝히는 빛이요, 썩어져 가는 세상을 살리는 소금이 되라고 말입니다.

신앙의 부활은 예수님으로 인해 거저 얻습니다. 그러나 인격의 부활은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2~ 24)라고 애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죽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법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세태에 따라 죄악과 쾌락을 좇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영혼이 살아 있으니 이 세태를 거슬러 올라가 산의 동네요, 등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마5:13~14). 그래서 우리를 보고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의 부활, 인격의 부활이 이루어질 때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될 것이며,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널리 전파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고전15:19). 할렐루야!

영생을 얻는 생명의 부활이냐

수욕을 받는 심판의 부활이냐

품위라는 그릇 속에

인격과 예절을 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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