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을 꿈꾸는가? 대화하라 (잠18:13~14)
요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폭행당한 아이가 자살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얼마 전에 TV에 자살한 아이의 어머니가 나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아이는 몇 번이나 나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내 말만 했어요. 요즘 너 왜 성적이 떨어지냐? 왜 학교가기를 싫어하냐? 뭐가 부족해서 그러냐? 그렇게 다그치기만 했지요. 그 아이는 계속 눈으로 절규를 했는데 나는 그걸 못 들었어요. 아이의 이야기만 들었더라면 내 자식을 살릴 수 있었는데….”
여러분, 저수지 바닥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보려면 저수지 물을 다 퍼내면 됩니다.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아내가 무엇이 불만인지, 내 남편의 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내 부모님이 불편하신 것은 없는지 알려면, 저수지 물을 퍼내듯 대화를 해서 퍼내면 됩니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대화를 안 해서 모르는 것이지, 대화하면 열 길 속도 알 수 있습니다.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오리무중인 것이고,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 드세요.”, “자자.”, “전기료는 얼마 나왔어?” 이런 일상의 말이 아닌 속내를 털어놓는 대화 말입니다.
대화(對話)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의 자녀교육법은 그들의 식탁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녁식사 시간에 거의 2시간을 할애하는데, 그 시간 동안에 가족끼리 음식을 먹으며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고,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화를 잘 못합니다. 왜냐하면 해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부모들도 교육을 받고 부모가 된 것이 아닌지라 자녀와 대화를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대화가 아니라 결국 훈계로 끝나게 되고, 좀 큰 자식하고는 토론으로 번져 기분이 상한 상태로 끝나곤 합니다. 대화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더욱이 가족 간의 대화는 먼저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겁니다. 학교에서 싸웠다고 하면 “그랬니? 왜” 하고 물어주면 아이가 다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의 이야기 서두만 듣고 화를 내며 “왜 바보처럼 맞고 다녀? 같이 때려야지.” 하며 야단을 칩니다. 그러니 아이가 이야기를 스톱하는 겁니다.
아내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대개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를 피곤해합니다. 뭐 영양가가 없다나요? 그래서 이야기 좀 하려고 하면 “피곤해. 빨리 얘기해봐.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난리야.” 이래버립니다. 그러니 아내가 친구 만나러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전화로 한 시간씩 수다를 떠는 겁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는 토하든지 싸든지 해야 하거든요.
남편도 그렇습니다.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데, 아내는 안 듣습니다. 힘들다고 하면 남들처럼 많이 벌어오지도 못하면서 그런다고 하고, 매일 돈, 돈, 돈 그럽니다. 그러니 밖으로 돌 수밖에요. 술집에 가면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무슨 말을 해도 “그럼요. 사장님이 옳지요.” 합니다. 돈 받으려고 그러는지 남자도 다 압니다. 그래도 들어주는 게 고마워서 팁도 얹어주는 겁니다. 그러다 지나치면 사고치는 거고요.
그러니 제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말하는 중간에 차고 들어가 충고하지 말고, 말을 끊고 야단치지 말고, 이야기의 반대편에 서서 토론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면서 “그랬어?”, “그랬구나.” 해주면 됩니다. 마치 창을 할 때 추임새 넣어주듯 말입니다.
창 한 소절 하고 나면 ‘얼쑤’ 할 때 더 흥이 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대화의 기본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경청(傾聽)할 줄 아는 자가 상대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습니다. 성경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약1:19).
여러분, 제가 60을 넘어 70을 바라보다보니 가정이 행복한 것 이상 없습디다. 나이든 부부가 꼬옥 손잡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그것이 그렇게 부럽습디다. 식당에서 자식과 손주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세상 어느 명화보다도 아름답습디다. 당신도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행복한 가정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후, 월요일에서부터 목요일까지 전국 집회를 다니고, 금요일에는 철야예배, 토요일은 주례와 심방, 주일예배, 그리고 다시 월요일에 보따리를 싸서 전국으로 집회를 가고…. 이런 세월이 길었습니다. 그러니 자연 아이들에게 소홀할 수밖에요. 애들이 몇 학년 몇 반인지, 담임이 누구인지, 애들이 뭘 원하는지 몰랐습니다. 애들하고 이야기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애들이 오랫동안 방황했었습니다. 대화하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후회하는 일입니다. 애들하고 대화를 했더라면 가슴 아파야 했던 세월을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원합니까? 가족 간에 대화를 하세요. 부부 간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대화하세요. 그것이 행복의 충족요건입니다. 저처럼 후회하지 말고, 지금 대화의 장을 여세요. 대화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먼저 문을 열어야 옳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사 우리와 소통하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남편이 먼저 이야기 자리를 만드세요. 부모가 먼저 대화의 장을 여세요. 그러면 행복은 벌써 당신 가정의 문턱에 들어선 것입니다.
따스한 가정은 보일러를 많이 돌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남향집이라서 따뜻한 가정이 되는 게 아닙니다. 돈이 많아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대화가 있는 가정, 소통하는 가정이 따스한 가정입니다. 그런데서 자란 아이는 힘이 넘치고, 올바르고, 밝습니다. 그러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사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어둡습니다. 밥은 많이 먹는데 힘이 없어 보이고, 자신감도 없어 보이고, 우울해보입니다. 냉골에서 자고 난 아이처럼 말입니다. 애들만 그렇습니까? 아내도 그렇습니다. 남편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대화는 인생의 마스터키입니다. 대화로 풀면 안 풀릴 게 없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서로 원수지간입니다. 왜냐? 그들이 서로 대화할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들어 흔들고,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내립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이와는 정반대로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내리고 기분이 나쁘거나 싸울 때 꼬리를 바짝 올립니다. 그러니 개가 기분이 좋아 꼬리를 올리고 가다 고양이를 만나면, 고양이는 싸우러 오는 것으로 여겨 덤비게 되는 겁니다. 만일 개와 고양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대화할 수 있다면 이런 오해는 풀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그들은 평생 원수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부사이가 개와 고양이 같습니까?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삽니까? 대화를 안 해서 그런 겁니다. 둘이 여행을 떠나 밤새도록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보세요. 분명히 관계개선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면 제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습니까? 피자라도 한 판 사서 들고 들어가 대화를 해보세요. 부모에게 쌓인 게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당신이 듣기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도 야단치지 말고 들어주세요. 당신의 양에 차지 않아도 화 내지 말고 들어주세요. 지금 대화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 때는 후회하기에도 너무 늦습니다.
돌팔이들은 듣지 않고 침통부터 들지만, 명의는 환자의 이야기를 오래 들은 후에 처방합니다. 여러분도 가정의 명의가 되세요. 가족의 말을 들어준 후에 처방하면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노력해야 만들어집니다. 오늘부터 식탁에 앉아 서로 대화를 해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점차 마음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할렐루야!
온돌에서 잘 것이냐
냉골에서 잘 것이냐
명의(名醫)는 일침(一鍼)
오래 진맥한 후 치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