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어떻게 살 것인가?
몇 주 전 일이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어느 권사님의 조카 되는 분이 간암으로 인천 길병원에 입원 중인데,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겠다며 마지막 기도를 부탁하셨다.
병원에 가보니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는 환자, 그는 41세의 젊은이였다.
암을 발견한지 두 달 됐단다. 곁에는 아들의 죽음을 앞두고 어찌 할 바를 몰라 서성이는 어머님과 다음 달 출산을 앞둔 아내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나 역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영혼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해주었다. 결국 그 분은 다음날 밤,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입관할 때다. 모두 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두 분의 상조회 장로님들이 환자복을 벗기고 수의를 입히려는데, 곁에서 흐느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통곡하며 울부짖으신다. “얘야! 안 된다. 추워서 안 된다. 추워서 안 돼….” 그 어머니는 입관 실이 지하실이고 겨울이라 아들이 더욱 추울 것이라 여겨지시는 모양이다. 주위가 온통 눈물바다였으며 결국 어머니는 혼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내 귀엔 어머니의 “얘야! 추워서 안 된다.”는 통곡 소리가 주님의 외침 소리로 들려왔다. “사랑하는 성도들아! 그곳은 안 된다! 불과 유황의 그 지옥만은 안 된다! 그곳만은 안 된다! 너희들이 지금 그곳을 향해 가고 있지 않느냐? 너희 가족들이 그곳을 향해 가고 있지 않느냐?” 지옥의 문지방에 서서 주님은 두 손으로 우리를 막으신다. “나를 밟고 가려느냐! 나를 밟고 가려느냐!”(히10: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찌 하실 겁니까?
다음날 부평 화장장에서 화장을 하기 위해 6명의 친구들이 운구를 했다. 관을 든 친구들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짧은 세상을 살다 가지만 어쩌면 그 누구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었소. 당신의 친구들이 저토록 당신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하지 않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 과연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줄 친구들이 몇이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살아왔던 내 인생 항로를 뒤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친구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한 젊은이는 그렇게 한줌의 재가 되기 위해 화구로 향하고 있었다. 화장을 마치기를 기다리며 나는 무심코 1번 화로에서부터 20번 화로까지 걷기 시작했다. 화로 하나하나에 영정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엔 어르신들 사진도 놓여있었고, 어떤 곳에는 젊은이의 사진도 놓여있고….
그런데 그곳에 안타깝게도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이 유치원 사각모를 쓴 채 놓여있었다. 갈 때는 순서가 없다고 했던가?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이 시려오는데, 문뜩 ‘언젠가는 저 자리에 내 사진도 놓여 있을 날이 올 텐데…’ 라는 생각에 가슴이 짠해 온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각자의 사진도 놓여 있을 날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거늘 우리가 이 땅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2013년도에 우리들의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모습들을 일지로 기록하고 계실 것이다. 그 영원하신 생명책 일지에 뭐라고 쓰실까 생각하자.
한 성도를 보내고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 후회 없이 살다 가야할 텐데….
충성된 사람이 되자
몇 년 전에 저의 눈을 끄는 작은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 땅에 생명의 씨앗을 던져 주었던 언더우드 가문이 이제 한국을 떠난다는 기사였습니다.
언더우드 1세는 1885년에 파송 받아 교육 사업으로 예수학당(현 경신중·고등학교), 황해도의 소래교회, 현 새문안교회, 연희전문학교를 세웠으며,1926년에 과로로 사망하여 양화진에 묻혔고, 그 아들 언더우드 2세는 1912년에 파송 받아 아버지를 이어 사역을 하던 중, 49년에 좌익학생에게 아내가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부산에서 사역하던 중 과로로 사망하여 양화진에 묻혔으며,
그의 아들 언더우드 3세도 39년에 파송 받아 연희 전문대 교수, 41년 추방, 46년 경성대(현 서울대) 교무과장, 한국전쟁 때 해군통역으로 참전, 새문안교회 시무장로, 연세대 상임이사로 지내다가 이제 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출국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언더우드의 가문은 한국에 생명의 씨앗을 던져 어두움이 헤매던 이 땅을 생명의 땅으로 변화시킨 공로 이외에도 한국의 근대사에 적지 않은 공로가 있는 가문입니다. 대를 이어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헌신한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충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 앞에서 반드시 행한 일에 대하여 결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날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사님이 조장 일을 하셔야지요?”, “권사님, 이제 봉사 좀 하세요.”, “장로님, 이제 저 좀 도와주세요.” 하면, “목사님, 나중에 할게요.”, “아이가 크면요.”, “시집보내고 나면은요.”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꼭 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건강을 잃어서 못하고, 나이가 너무 많아서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먼저 받아서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인생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인생이란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라고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많이 얻고, 학식이 뛰어나 명성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지고 주님을 얼마나 영화롭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물질을 가지고, 건강과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라는 책에서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당신의 삶이 끝났을 때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시나요?” 라고요. 어떤 목사로, 어떤 장로로, 어떤 권사로, 어떤 집사와 성도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
아! 아무개 목사, 그 사람 충성되었지!’, ‘아무개 장로, 권사, 집사, 그 사람 정말 충성된 사람이었었지.’ 그렇게 기억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2013년, 하나님의 일에 충성된 자가 되십시오.
인천예수중심교회 김상복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