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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조금씩, 조금씩 응답하시는 하나님 (출23:20~33)

674호 · 2013-01-25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마치고 나와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도중, 시내산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시내산에 이르자 모세는 산에 올라 하나님과 대면하며 십계명과 백성에게 행할 율례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출23:28~30)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어 가나안에 살고 있던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내쫓아 너희로 하여금 가나안을 점령하게 할 것이지만, 당장은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속전속결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몰아낸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저들도 불쌍히 여기셔서 그러셨을까요? 둘 다 아닙니다. 이유는 바로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하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정착할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그 땅에 원주민이 살지 않으면, 들짐승이 들끓고 땅이 황폐해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서 인구가 격감하자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자에 의해 피해를 본 사실이 열왕기하 17장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사 들짐승으로부터 보호하시려고 조금씩, 서서히 땅을 정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가끔 저에게 한 번 안수를 받고 안 나았다고 불평을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게, 기합을 넣어서 다시 안수 해달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 안수는 세게 한다고 단번에 낫고, 약하게 하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돼서 썩은 냄새가 나는 송장도 당장에 살리시고(요11:44),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한 자도 즉시 고치십니다(눅8:44).

그 분은 전지전능하시고, 창조주이시며, 더욱이 그 분의 이름 앞에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복종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병을 당장 고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이 처한 환경을 즉시 개선하지 않고, 당신이 힘들어 하는 가난을 지금 거두지 않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건 들짐승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남들은 로또도 잘되더구먼,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인색하셔?’, ‘하나님의 역사는 2천 년 전에 다 끝난 거야. 아니면 이렇게 기도했는데 안 나을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건 하나님을 오해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도, 그 분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당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도 잘 아시지만, 우리의 믿음의 상태도 너무 잘 아시거든요. 즉시 주면 독이 되고, 당장 주면 귀신의 밥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까봐 늦추시는 것입니다.

목회 28년 동안 저는 그런 자들을 참 많이 봐왔습니다. 정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자가 갑자기 돈이 넘치자 교회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병들었을 때는 그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철야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오고, 봉사도 하더니 병이 낫고 나서는 아예 세상으로 나가버린 자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우려대로 들짐승, 곧 악한 마귀에 잡혀먹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뭐가 아깝다고 안 주시겠습니까? 뭣 하러 감추겠으며, 뭣 하러 지체하시겠습니까? 다 줘도 아깝지 않고, 더 주고 싶은 분이 하나님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그러시는 것은 ‘네가 번성하여 기업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받을 만한 그릇이 될 때까지 늦추시는 것이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아픈 과거사가 있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시고 너무 너무 좋으셨던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아낌없이 에덴동산을 거저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담이 마귀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가슴을 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아들을 주고 다시 산 자녀들에게는 ‘뚝딱’ 주시지 않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아픔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으신 겁니다.

물론 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뚝딱 홍해가 갈라지게 하고,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들짐승의 밥이 될 조짐이 있는 자에게는 조금씩, 서서히 주십니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 받을 그릇이 된 자들로 만드셨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면 즉시로 홍해가 갈라지고, 만나가 내리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역사하신 것은 모세만 특별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40년 훈련을 통하여 충분히 받을만한 그릇과 절대 마귀에게 넘어가지 않을 믿음을 소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담하다보면 이런 말을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 죽을 만큼 주십니다.” 라고요. 하나님을 향한 원성이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매일 조금씩, 조금씩 가다보면 마침내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할 날이 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리라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완전히 정복하는 데는 400여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마침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에 따라 다윗이 국가를 건설하고 마침내 솔로몬에 의해서 참 평화의 나라가 건설될 때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한 것, 여러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실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은 왕벌, 곧 하나님의 사자를 들어 분명히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뭐든 단번에, 빨리빨리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그것이 계속 되면 마침내 커다란 업적을 남기게 됨을 아십시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우습게 보이지만, 그것이 마침내 돌을 뚫고, 티끌이 모이면 태산이 되는 겁니다. 거목은 절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서히 조금씩 자라 마침내 거목이 되는 겁니다. 제가 하루아침에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까? 우리나라가 자고 일어나니까 세계 경계대국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서서히 전진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대박을 바라는 대신 매일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겁니다. 며칠 만에 10kg 빼려고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운동하고, 조금씩 적게 먹는 겁니다. 공부도 단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매일 꾸준히 하는 겁니다. 그러면 마침내 원하는 바에 이를 수 있습니다. 기도도 급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가 엄습하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도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자고할 까봐, 교만해지고 도가 넘을까봐 하나님이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혹 교만하게 되어 마귀에게 걸릴까봐 그러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의 단점에 기뻐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오히려 영이 강건케 되었다고 감사했습니다(고후12:7~10).

병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누가복음 17장의 고침을 받은 아홉 명의 문둥병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체하시는 겁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길 오래 기도했는데 아직 입니까? 그건 누가복음 14장 17절에 소 다섯 겨리를 산 자와 같이 될까봐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것이고, 결혼기도에 아직 응답이 없습니까?

그것 역시 장가들었다고 천국잔치에 참석 못하는 자가 될까봐 하나님이 일부러 그러시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고, 낙담하지 않고 믿음의 분량을 키우면 마침내 더 좋은 결과에 이를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못하시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를 위해 안 하실 때도 있다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절제와 인내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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