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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구도가 아니라 협력구도로 가자 (잠17:14)

672호 · 2013-01-11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창설 50주년을 기념해 각국의 생활환경과 삶의 질을 측정해 수치화한 ‘행복지수(The Better Life Index)’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OECD 가입국 34개국을 대상으로 측정했는데, 그 결과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34개 국가 중 26위를 차지했습니다. 최하위권입니다.

뜻밖의 결과지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3만에 육박하는 경제선진국에 사는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34개국 중 26위라뇨? 먹을 게 넘쳐나고, 다양한 문화를 누리고, 최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우리 국민들이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한 번쯤 심각하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중 하나의 요인을 꼽으라면 지나친 대결구도가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좋게 말하면 대결구도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너무 싸우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서 기업 사주와 노동자가 싸우는 이야기를 자주 접합니다. 또한 국회에서 여야가 치고 박는 모습을 봅니다. 나아가 신성해야 할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가 싸우는 것도 보고 듣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식을 누려야할 가정에서조차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싸움이 잦습니다. 그러니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17:14)는 오늘 본문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다투기 시작하면 방축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방축에서 물이 새는 건 방축에 틈이 생겼다는 것이고, 이는 곧 방축이 무너질 조짐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노사가 싸우면 기업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고, 여야가 매일 싸우면 국가 안보가 위험하고, 교회가 싸우면 교회가 문 닫을 날을 받아놓은 것이고, 부부가 싸우면 법원에 갈 날이 가까웠다는 겁니다. 이렇게 방축에 틈이 생겨 물이 줄줄 새는데도 무시하고 계속 싸우면, 곧 방축이 와장창 무너져 그동안 수고해서 일궈놓은 전답을 다 쓸어갈뿐더러 사람까지 다치게 됩니다. 기업이라는 방축이, 교회라는 방축이, 국가라는, 가정이라는 방축이 무너져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말입니다.

공멸한다는 것이죠. 부부가 싸워보세요. 부부만 죽는 게 아닙니다. 애써 키워놓은 애들도 무너지고, 노사가 싸워보세요. 그동안 쌓아놓은 업적이 다 무너지고 노사 모두 죽습니다. 정부와 국민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여야가 싸움질만 하면 국가는 후퇴해서 결국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 짝이 나는 것이고, 목사와 장로가 싸우면 성도들이 떠나고 교회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우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싸움의 기술’이라는 영화제목처럼 싸움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한 쪽에서 싸움을 걸어오면 정면 승부하지 말고, 피하는 것이 싸움의 기술입니다. 손바닥이 마주 치니까 소리가 나는 것이지요. 아무리 한 쪽 손바닥이 세게 휘저어도 다른 쪽 손이 피하면 절대 소리가 나지 않는 법입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든 상대가 너무 화가 나있으면 잠시 피해야 합니다.

맞대응하면 안 됩니다. 뜨거워진 주전자를 들다가는 손도 데고, 떨어뜨려서 사람까지 델 수 있습니다. 잠시 식을 때까지 놔두면 될 것을 덤비다가 일내는 겁니다. 실제 우리 교회 성도 중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참으라고, 피하라고 했건만 마주 치다가 일 낸 경우 말입니다. 이삭은 그랄 목자들이 우물을 빼앗으며 싸움을 걸 때마다 피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더 큰 우물인 르호봇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라’는 뜻입니다(창26). 또 에서와 야곱이 장자권 문제로 싸움이 일 것 같으니까 현명한 어미 리브가가 야곱을 외삼촌 집으로 피난시켰습니다. 만일 ‘누가 이기나 정면승부 해봐라’ 했더라면 에서와 야곱 둘 다 망했을 겁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과 다툼을 피하여 가나안쪽으로 갔고(창13), 마가의 일로 다툼이 났을 때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고,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구브로로 갔습니다(행15:36~41). 그들이 싸우면서 같이 다녔더라면 그들은 결코 복음 전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닙니다. 더러워서 피하는 겁니다. 싸움에 질까봐 피하는 게 아니라 싸움으로 야기될 일들 때문에 피하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보니까 어떤 것이 행복인지 이제 좀 알겠습니다. 예전에는 돈이 많아야 행복한 줄 알았습니다. 명예도 가질 만큼 가져야 행복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디다. 비록 마른 떡 한 조각을 먹을지언정 화목한 것이 정말 행복입디다. ‘화목’은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뜻이 맞고 정답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젊은 부부들이여! 서로 대결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한 몸입니다. 한 몸이 서로 대결한다면 제 발을 제가 찧는 꼴이 아닙니까? 행복하려고 결혼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서로 이해하고 조금 참아 싸우지 말고 사세요. 방구가 잦으면 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니 어쩌니 하지 말고 싸우지 마세요. ‘우리는 치고 박고 싸우지는 않아요.’ 하십니까? 여러분, 말로 싸우는 것이 더 아플 수 있습니다. 뱀에게 물리면 그 독이 한 달 가고, 개에게 물리면 독이 열흘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물리면 그 독이 평생 간다고 합니다. 말로 사람을 물면 그 독이 평생 갑니다.

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이 살아야 사원도 사는 겁니다. 반대로 사원이 힘을 받아야 기업이 사는 겁니다. 서로 공생해야 하고, 상생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투견처럼 무조건 싸움부터 하면 공멸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입은 서로 물어뜯으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말로 의견을 나누라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싸우지 마세요.

교회도 그렇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싸우고, 장로와 성도가 싸우고, 성도와 성도가 싸우면 그 교회가 바로 서겠습니까? 거기에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지겠습니까? 마귀의 은혜가 쏟아질 겁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떠나고 교회는 텅 비고 말 것입니다.

국가도 그렇습니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제는 정치판이 좀 달라졌으면 하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바람입니다. 여야가 당파싸움 좀 하지 말고 국민을 위해 협력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대북관계도 대결구도가 아니라 협력구도로 갔으면 합니다. 싸워서 좋을 게 없습니다. 폭탄 하나라도 날아오면 우리 아들들이 죽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변화의 급물살을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북 서로가 협력의 구도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항공모함이라고 해도 배에 물이 새기 시작하면 결국 침몰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눅11:17).

후회 없는 삶을 원합니까? 싸우지 마세요. 이혼한 후에 후회하면 늦습니다. 회사가 문 닫은 후에 후회해도 늦습니다. 교회가, 국가가 망한 후에 후회는 정말 소용없습니다. 다툼이란 암적인 존재입니다.

암(癌)이란 글자를 보세요. 암은 많은 입으로 상대를 물어뜯다가 결국 자신도 죽는 대책 없는 존재입니다. 다툼이 이와 같습니다. 다투고 싸우면 상대만 죽는 게 아니라 결국 너도 죽고 나도 죽습니다. 그러니 다툼은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사나운 파도를 잠재우는 모래가 된다면 싸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매일 고기반찬에, 큰 차를 타야 행복한 게 아닙니다. 화초장 놓고 매일 싸우면 그게 개초장이지 화초장입니까? 행복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할 때 생기는 발효제입니다. 그러니 다투지 마세요. 그래서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사업터, 행복한 국가를 만드세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할렐루야!

개미가 낸 작은 구멍이

큰 댐을 무너뜨린다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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