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大人)과 소인(小人)
아들아!
작고하신 내 믿음의 어머니, 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란다.
대구의 어느 목사님이 사모님이 돌아가신 후, 교회 집사가 밥을 해주기 위해 사택을 드나들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밥을 해주는 집사가 덜컥 임신을 했지 뭐니? 그러니 성도들은 당연히 목사님의 아이라고 수군거렸고, 장로회에서 이 문제를 트집 잡아 목사님을 쫓아냈단다. 교회를 나온 목사님은 아무 말 없이 대구의 앞산에서 생활을 하셨단다.
이후에 그 집사가 아이를 낳았지. 그러자 교회의 장로들이 이 핏덩이를 목사님에게 던지듯 넘겨줬단다. 그래도 목사님은 아무 말 없이 어린 것을 보살폈지. 그러나 어디 먹일 게 있어야지. 마을로 젖동냥을 하러 나가봤지만, 이미 소문이 난 상태라 누구하나 어린 것에게 젖을 물려주는 사람은 없었단다. 할 수없이 목사님은 쌀로 암죽을 만들어 아이에게 먹이며 정성껏 키웠단다.
세월이 흘러 그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는데, 아주 성령 충만한 집회였던 모양이다. 부흥사가 모두 회개하라며 통성으로 기도를 시켰는데, 이 때 밥을 해주던 그 집사가 성령에 이끌려 단에 올라가더니 방성대곡을 하면서 그 아이는 목사님의 아이가 아니라 시아주버니의 아이라고 실토했단다. 회개의 영이 임한 거지. 이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은 그야말로 까무러칠 수밖에.
다급히 교회에서는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목사님께 부린 행패를 생각하니 스스로 생각해도 가관이거든. 그래서 그들은 다시 목사님을 모셔와 섬기기로 하고는 앞산을 찾았지. 앞산에 도착하니 목사님은 아이를 등에 업고 기도하고 계셨단다.
장로들은 왜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느냐고, 잘못했으니 이제 교회로 돌아오시라고 했지. 그러자 목사님은 허허 웃더니 아이를 엄마에게 보내며 지금 계신 목사님이나 잘 섬기라고 했단다. 그리고 나가서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지금 대구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이건 실화란다.
너라면 이런 경우 어쩌겠니? 십중팔구 유전자 검사해보자고, 내가 안 그랬다고 펄쩍 뛰었겠지?
아들아!
대인배와 소인배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니? 바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대인은 그것을 묵묵히 이겨내지만, 소인배들은 변명이나 핑계에 급급한 거란다. 대인을 대해(大海)로 비유하자면, 소인은 시냇물쯤으로 비유될까?
대해는 돌을 던져도 출렁이지 않지만, 시냇물은 작은 돌을 던져도 출렁이지. 또한 대해는 더러운 물도, 똥물도 다 받아내어 정화하듯 대인은 모든 사람을 수용할 능력이 있지. 나는 내 아들이 대인배가 되기를 원한다. 대해요, 태산 같은 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