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구원의 깃발을 높이 들고
새해의 진정한 의미는 ‘새’라는 형용사에 숨어 있습니다. ‘이전과는 다르다’는 의미를 품고 있으니 갱신과 갱생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새로움은 변화를 낳고, 변화는 생산성의 원동력이 되기에 그런 의미에서 ‘새’는 나를 바꾸고, 우리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핵이 되는 것입니다.
갈수록 세상은 패역해지고, 교회도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을 향한 복음의 빛은 더욱 강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우리 교단에 있다고 자부합니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마귀와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의 강력한 결집력이 요구되며 요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은 결국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과 순종만이 우리의 일이라는 원칙을 잊으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에 여러 모순과 불합리한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판단하실 분은 주님이시니 우리가 할 일은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를 지켜보며 영적 깊이를 키우는 일입니다.
문제는 자신입니다. 지난 한해 힘들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어둠이 빛을 불러오고, 배고픔이 식욕의 기쁨을 알게 하는 것같이, 그 고통이 인생과 목회의 맛을 알게 했습니다. 사랑의 고통을 알고 제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마음이 뻣뻣해서 가난하고 못난 이웃을 업신여기며 저 잘난 줄만 아는 내가 아닌지…. 각박함과 탐욕을 경계하고, 몸은 오동나무처럼 강건하게, 마음엔 미풍 이는 봄날 같은 온유한 인격이 담기도록 애써야겠습니다.
앞뒤 분별없이 달려가는 자는 필경 남에게 누를 끼칩니다. 빨리 달릴 줄 안다고 저 혼자 달려가는 것은 덕이 아닙니다. 남의 처지도 살펴보고 천천히 가야합니다. 저를 돌아보고 마음을 경책할 줄 알아야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습니다. 기도는 저를 두루 돌아보는 마음의 시간입니다. 기도는 고독의 오롯한 숭고함 속에서 영성을 키우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삶을 웅숭깊게 하고 제 품격을 높이며 향기를 더하는 기도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고 옛 경전을 널리 섭렵해 마음을 여미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성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성경의 진리에 푹 젖은 지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정보원이 되어야합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 모든 지식과 지혜를 모으고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크리스천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성경적 지식을 100% 활용하고,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새해는 활짝 열렸습니다. 장대비처럼 호쾌하게 일을 밀고 나가고, 붉은 석류 속처럼 꽉 차는 보람과 결실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불꽃과 사랑의 충만함으로 주님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할렐루야!
사소한 잘못을 뽑아내자
‘깨어진 유리창 이론’이란 것이 있다.
그 이론은 이렇다. 한 골목길에 2대의 차를 어느 정도 먼 간격을 두고 방치해 놓았단다. 한 대는 보닛만 열어 놓은 깨끗한 차량으로, 또 다른 한 대는 의도적으로 창문을 하나 깨버린 상태로 주차해놓았다.
그로부터 10분정도가 지나자, 깨진 유리창이 있는 차에는 누군가 접근해서 배터리를 빼갔고, 그 뒤에 또 다른 이가 와서 바퀴를 빼갔다. 또한 신사복을 입은 사람조차도 지나가다가 깨진 유리창이 있는 차를 발로 차질 않나, 사람들의 낙서와 투기 등, 차량 외관에 파손을 일으켰다. 일주일이 지난 후, 그 깨진 유리창의 차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폐차가 되어버린 반면, 보닛만 열어둔 자동차는 특별히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단다.
이것은 낙서나 유리창 파손 등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결국 큰 범죄로 이어지게 된다는 범죄심리학 이론을 설명한 실험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침해행위가 발생했을 때 방치하면 결국 더 큰 행위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의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고 치안이 불안한 도시였는데, 1994년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취임하면서 절망적인 뉴욕치안을 개선하기 위해 ‘깨진 유리창’의 이론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눈감아 주던 사소한 경범죄인 지하철 무임승차, 구걸, 노상방뇨 등을 엄하게 처벌하기로 하면서 경범죄에 우선적으로 강력히 대처하였다.
처음에 뉴욕 시민들은 치안개선을 공약하고 당선된 줄리아니 시장의 행보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뉴욕의 범죄 발생 건수는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연간 살인사건이 50%나 줄어들면서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이론은 일반 조직 관리에서나 가정에서도, 그리고 영적인 문제에도 적용된다. 회사조직 내의 사소한 잘못에 대하여 관대하게만 대처하는 것은 그 회사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나치게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 엄하게만 처벌하는 것도 문제지만, 조직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사소한 잘못들을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악영향을 그 조직에 줄 것임이 분명하다.
가정에서도 자녀의 사소한 잘못을 사랑하고 귀하기에 그저 방치해 두기만 한다면, 바늘도둑이 소도둑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도 주일날 지각하는 사람은 단골로 지각하고, 기계적으로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이도 있다. 반면에 교회 오면서 오늘은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주실까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후자는 영·혼·육이 윤택해질 것이다. 기대감 없이 기계적으로 교회에 왔다 가는 것을 방치해 두면 그 영혼은 피폐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곡식을 망하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잡초다. 잡초를 방치해 두면 잡초가 자라 결국 곡식을 덮어 버린다. 하지만 잡초가 났을 때 뽑아버린다면 풍성한 열매를 기대해도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을 망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자. 아주 작더라도 잘못된 습관, 거짓말, 불평, 남의 탓 등 우리 인생을 피폐하게 하는 사소한 것을 뽑아내자. 그리하여 2013년은 후회 없는 삶이 되기를 기대한다.
여기까지 하나님이 도와주셨다
블레셋의 침략으로 다급해진 이스라엘 군대가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가게 된다. 그러나 법궤를 빼앗기고 그 전쟁에서 삼만 명이 전사한다. 법궤가 전쟁의 승리를 좌우했다. 법궤가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긴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을 맛볼 수 없었다.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지시리라.’ 하며 미스바에 모여 회개하자 이 소식을 들은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온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패하게 하셨다. 그 후 하나님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
한국의 역사는 전쟁으로 얼룩졌다. 그것도 동족상잔으로 인해 폐허가 된 나라였다. 36년간의 일본 압제와 얼마 있지 않아 일어난 6.25전쟁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 나라에 소망의 싹이 나고 있었으니, 그것은 먼저 성전과 기도원을 건축하고, 거기서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가히 대한 산야를 뒤흔들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이 나라를 짧은 시간에 세계 사람들이 감탄할만한 나라로 만들어주셨다.
지난해 세계무역 수출국 9위에서 이탈리아를 제치고 8위로 올라섰고,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 제품이 올해 가장 많이 수출한 효자 종목이 되었던 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1997년 11월 국가 대재앙 IMF로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나라가 휘청거렸지만 2000년 12월 IMF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전 세계의 나라는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시간에 IMF에서 벗어났고, 올해 11월에 IMF이사국이 되었다. 또 올해 유엔회원국 193개국 중 149개국의 압도적인 투표결과로 유엔안보리 이사국으로 진출하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나라는 샤머니즘, 불교, 유교로 우상을 섬기던 나라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점점 나라가 부강해졌고. 많은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가난한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이 이웃 나라로부터 전쟁을 막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남아시아에는 벼농사를 이모작. 삼모작하는 데도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들이 많다. 그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자. 이 땅에 평화와 번영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남은 세월 더욱더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힘써 하나님을 높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