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그 위대한 특권
음악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하나가 전 세계인들을 똑같이 춤추게 만들었고, 소위 K-POP이라고 불리는 한국 대중가요의 비약적 발전으로 모 연예기획사의 주가 총액이 1조가 넘는다. 유명가수들의 국내외 콘서트에는 몇 만 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그들의 함성과 성원은 도시 전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보자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음악의 뿌리, 찬양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보좌는 지금 얼마나 풍성한 찬양으로 채워져 있을까? 과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저렇게 남녀노소를 불문한 많은 이들로 채울 수는 없을까?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얼마나 위대한 권능과 힘을 가지고 있는지 성경을 상고할수록 아쉬움은 더욱 진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창조목적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시편에 하나님이 찬양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황소를 예물로 드리는 것보다 더하며(시69:30~31), 찬양을 해야 하는 대상이 ‘호흡이 있는 모든 자’(시150:6), 즉 살아 숨 쉬는 우리 모두임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과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사울이 악귀에 들려 극심한 두통에 시달릴 때,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타기 시작하자 사울이 상쾌하게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는 것을 보건대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요 영적인 힘과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삼상16:23).
유다왕 여호사밧이 에돔 왕과 함께 모압과 전쟁을 준비할 때, 목이 말라 군사들이 기진맥진하자 선지자 엘리사에게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사건도 그렇다. 엘리사는 먼저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거문고 탈자를 불러오게 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그리고 찬양이 시작되자 하나님의 감동이 엘리사 위에 머물렀고, 개천을 파내어 물을 공급해 주는 기적과 함께 모압을 그들에 손에 붙여주신다고 약속하신다(왕하3:15~18).
또한 여호사밧은 유다 민족을 죽이기 위해 연합군들이 몰려올 때도 찬양의 권능을 맛본다. 하나님께서 레위사람 야하시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실 것을 약속하시자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했고, 전쟁의 선두에 병사가 아닌 노래하는 자들을 세워 비파와 수금, 나팔을 연주했다. 이에 하나님은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온 적들을 전멸시키며 승리를 안겨주신다(대하 20:21~23).
이처럼 찬양은 대중가요처럼 단순히 분위기 전환용 음악, 청중 앞에서 실력을 뽐내는 연주가 아닌 그 자체가 예배요 능력이며,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신 놀랍고 위대한 특권이다. 화려한 가사와 대단한 성대가 아니어도 좋다. 매순간 우리의 작은 입술이 하나님의 위대하심, 구원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찬양하므로 하나님의 보좌를 채우고 그 분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하인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