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지상최대의 사명은 전도다 (롬10:9~15)
얼마 전 한 리서치에서 우리나라 대학생 중 몇 %가 종교를 기독교라고 말하는지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고작 3%만이 자신이 기독교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중국의 젊은이들 중 8%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에 비해도 너무 낮은 수치입니다.
여러분, 이건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 결과에 교회는 통탄해야 하고, 자숙해야 하며,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증인이 되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라는 것이었습니다(행1:8). 그런데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선교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혼구원에 있습니다. 복음을 들고 나가 전해야 하는 것이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구제도 좋고, 헌신도 좋지만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인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복음은 계속 서진(西進)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에까지 왔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되어 있듯 사도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기에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전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전해야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10:14).
그 누군가가 우리여야 합니다. 그 누군가가 우리 교회여야 하고, 그 누군가가 우리나라여야 합니다. 저는 이사야서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말씀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꼭 “접니다.” 하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의 대답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내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경륜(經綸), 곧 하나님의 계획은 예정된 대로 진행됩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우리 교회가 하지 않아도, 우리나라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들어서, 다른 교회를 들어서, 다른 나라를 들어서 진행하십니다. 촛대를 옮겨 계속 일을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 왕 앞에 나가라고 할 때, 에스더가 이로 인하여 고민하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딱 한 마디 던집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에4:14).
무슨 말입니까? ‘에스더, 네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는 게 네게 좋다’ 이런 뜻입니다. 언젠가 제가 꾼 꿈 이야기를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꿈에 제가 너무 지쳐서 누워 있으니까 주님이 저더러 “너 아니면 사람이 없냐?” 라고 말씀하신 꿈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지 않으면 마른 막대를 들어서라도 경륜을 이루십니다. 다만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주신 사명이 남에게 넘겨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교회로 넘어가서도, 다른 나라로 넘어가서도 안 됩니다. 그건 주님의 사랑과 관심도 넘어간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이 들었다고 주저앉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들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60이 넘은 나이에도 복음을 들고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있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유실수가 잎은 무성한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잘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인격화하면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내놓으라고 하실 때 아무 열매도 내놓지 못하면 잘리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좋은 듯한데 열매가 없는 자가 곧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입니다. 그게 혹시 당신은 아닙니까? 혹시 그게 나는 아닙니까?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농촌에 일손이 모자라서 난리입니다. 곡식을 추수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말입니다. 배추를 거둬들일 사람이 없어서 트랙터로 배추 밭을 뒤집는 일을 텔레비젼을 통해 봤을 것입니다. 그 때 농부의 마음이 어떨까요? 가슴이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의 마음이 지금 이렇습니다. 추수할 사람이 없어 익은 곡식이 밭에 나뒹굴어 쥐나 좋은 일시키고 있으면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실 것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한 영혼이 주님 앞으로 인도되었을 때입니다. 성경은 한 영혼을 잃어버린 양으로(눅15:4~7), 잃었던 드라크마로(눅15:8~10), 잃었던 아들로(눅15:11~32)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면 너무 기뻐서 잔치를 배설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눅15:7).
곧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5:10)는 말씀의 답은 바로 ‘영혼구원’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하는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여러분, 전도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전도입니다. 미국의 소매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판매원의 48%가 손님에게 한 번 전화하고 포기하고, 25%는 두 번 전화하고 포기하고, 15%가 세 번 전화하고 포기한다고 합니다. 그 나머지인 12%만이 손님에게 끈질기게 전화하는데, 이들이 판매량의 8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 끈기가 필요합니다. 한 번 전하고 아니다 싶으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열매를 거둬야할 것입니다. 가끔 전도에 대한 설교를 하고 나면 성도들 중에는 며칠 동안 벼락치기로 전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마치 소낙비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실 소낙비는 땅에 스며드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 넘쳐서 하수구로 들어가고 말지요. 가장 보람된 삶을 사는 자가 누구냐 하면 전도인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꾸준히 전도하는 자, 전도가 생활화된 자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오십 마일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했습니다. 마을은 아직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 뿌연 먼지가 가득했습니다. 매일 이 길을 다녀야 하는 요한으로서는 뭔가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가지고 다니며 뿌렸습니다.
매일 말입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자 길 양쪽으로 각종 색을 띤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아름다운 꽃들이 즐비하게 피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습니다. 여러분, 전도도 이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날 아름다운 영혼의 꽃들이 즐비하게 필 것입니다.
전도는 취미가 아닙니다. 전도는 구호가 아니고 실전(實戰)이며, 마땅히 실천해야 할 주님의 지엄하신 명령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많은 전도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영혼구원을 위하여 뛰었고, 뛰고 있으며, 앞으로도 뛸 것입니다. 그들이 바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구령사업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 분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전도자들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이 귀한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낭떠러지를 향하여 가고 있는데 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쁜 사람입니다. 어린 아이가 후진하고 있는 차 뒤에서 놀고 있는데 구하지 않는다면 당신 역시 나쁜 사람입니다. 당신이 그 소경도, 그 아이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먼저 구원받은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할렐루야!
핍박과 순교가 오더라도
예수는 증거되어야 한다
사과 속의 씨는 셀 수 있지만
그 씨 속의 사과는 셀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