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여섯 살이었을까, 일곱 살이었을까. 사촌언니 책장에서 노란 표지에 큰 나비가 그려져 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 페이지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고 무슨 애벌레의 이야기였던 터라 우리 언니는 다 커서도 동화책을 읽는구나 싶었다.
책을 읽다 보니 무수한 애벌레들이 구름 저편의 하늘을 보기 위해 서로 기둥을 쌓아 올라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 애벌레 또한 구름 저편을 보기 위해 다른 애벌레들 사이에서 밟고 밟히며 어렵게, 어렵게 올라가고 있었다. 도중에 다른 애벌레와 사랑에 빠져 기둥을 내려왔지만, 구름 저편의 호기심을 버릴 수 없어 결국 사랑하는 애벌레를 떠나 다시 기둥을 오르게 되었다. 밟고 밟히며 겨우 도달한 꼭대기. 그러나 꼭대기에 도달한 애벌레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공허함과 낙심에 싸인 애벌레 앞에 아름다운 노랑나비 한 마리가 다가왔다. 나비는 다른 애벌레를 밟지 않고도 커다랗고 아름다운 노란 날개로 애벌레가 온갖 고생을 거쳐 올라온 기둥 꼭대기에 손쉽게 도달했고, 애벌레는 그 나비가 자신이 사랑했던 애벌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도 한 마리의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애벌레는 기둥에서 내려와 나비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실로 싸매었고, 어둡고 답답한 고치의 시간을 견뎌낸 후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입시에 치이는 중·고등학생이 되고, 또 시간이 흘러 소위 스펙 쌓기에 치이는 대학생, 성인이 되었다. 어느덧 나도 내 삶의 목표, 구름 저편의 하늘을 보고자 밟고 밟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공뿐 아니라 부전공에 교직이수, 어학연수, 교환학생, 각종 시험 성적취득 등 열심히 오르고 또 오르면 구름 저편의 하늘에는 나의 노력을 보상해 줄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그 길의 끝에는 어떠한 보물도 없었다. 공허함과 혼란만이 나를 반겨줄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태까지 힘들게 올라온 이 기둥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올라온 것일까? 내려가는 동안 다른 이들이 손가락질 하지나 않을까?
그 때 한 줄기 희망처럼 나에게도 한 마리의 나비가 다가왔다. 아,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은 저런 멋진 날개를 갖는 것이었는데, 나도 저런 날개를 갖게 될까? 나비는 날갯짓으로 자꾸 무언가를 가리켰고, 그 지시를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온 지상에는 고치가 있었다.
고치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여태까지 쌓아온 학력, 외국생활 경험, 외국어 실력 등을 모두 뒤로 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저 고치가 되면 과연 나비가 될 수 있을지, 고치 안에서 나올 수는 있는지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고치가 되면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만이 확실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에서 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고치 안은 어둡고 답답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내가 선택한 어둠뿐이었다. 움직일 수도 없어 몸도 아팠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스트레스도 치솟았다. 그러나 견디어야 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나는 애벌레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고치 그 자체로 죽는 수밖에 없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내 앞에서 팔랑거렸던 나비의 날개를 떠올렸다.
시간의 흐름에도, 내 몸과 정신적 피로에도 무감각해질 무렵, 저 멀리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바늘구멍 같은 작은 빛. 그 점은 점점 커지더니 새하얀 광채로 내 눈을 가리웠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태양 빛이었다. 그리고 나의 등에는 묵직하니 든든한 날개 한 쌍이 돋아 있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아 날 수는 없지만 내 등에 달린 그것은 내가 그리던 날개가 분명했다. 아아, 이제서야 나는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날자. 이제는 날아보자.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내가 성취한 이 희망을 전달해주자. 나를 기다릴지도 모르는 그 애벌레를, 그리고 내가 가루를 옮겨주어야 할 그 꽃을 찾아 희망이라는 보물을 전해주자. 어느 애벌레에게는 고치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어느 꽃에게는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나비가 될 수 있겠지. 날개가 마를 때까지는 또 다른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이제는 거뜬히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어느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날자, 날자, 날아보자꾸나.
꽃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날자, 날자, 날아보자꾸나.
김진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