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한다 (눅18:27)
하나님은 못 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늘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분이 뭐든 다 해주시지는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분은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말씀이 성경 어디 있냐고요? 마태복음 7장에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믿는 자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야.’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없지만 젊은이들 중에서도 소위 거룩한 백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입을 맞춘 듯 하는 말이 ‘하나님이 다 해주실 거야.’입니다. 그리고 빈둥빈둥 놉니다.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지만, 기도와 더불어 공부해야 하고, 연구해야 하고, 일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과 사업터가 나타나고, 남들보다 더 좋은 기술을 익히고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논에서 곡식이 납니까? 우물가에서 하나님만 쳐다보면 하나님이 입에다 물을 부어줍니까? No,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고, 길쌈을 매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할 때 하나님이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시어 많은 열매를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역시 우물을 퍼서 양동이에 담든지, 마시든지 해야 해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장정만 60만 명,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 합하여 200만 명을 이끌고 애굽을 나올 때 애굽 군대가 홍해까지 쫓아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바로 홍해를 갈라주신 것이 아니라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에 내밀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말대로 행할 때, 이에 하나님이 역사하사 홍해를 갈라지게 하셨습니다(출14:15~20).
거지 2대인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시자 소리를 질렀습니다. 눈 뜨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가신 것이 아니라 그를 부르셨습니다. 눈도 안 보이는 자를 말입니다. 마태복음 7장 말씀처럼 ‘구하라’는 겁니다. 문을 두드리라는 겁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바디매오가 예수님께로 달려갔더니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셨습니다(막10:46~52).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도 기름이 가득한 등불을 준비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며, 기름 준비는 누구도 아닌 각자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노력한 자만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과도 상통하고, 열심히 일한 자 만이 풍족할 수 있다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어느 학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공부 많이 했냐고요. 그랬더니 머리를 긁적이더군요. 많이 안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어떻게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이 나오길 원하느냐고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줬습니다. “하나님, 공부한 것이 생각나고 기억나게 해주십시오.”
그럼요, 하나님의 법칙은 심은 대로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첫 기적현장인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이 바로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아구까지 말입니다(요2:7). 하인들이 할 도리를 하고 나서야 예수님은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다른 이야기도 해드릴까요? 결혼 적령기인 다섯 처녀가 교회에 모여 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좋은 배필 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었건만 한 사람도 결혼을 못했습니다. 이 다섯 처녀는 너무 낙담하여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왜 결혼을 못하는지 말입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자매님들, 답답하네요. 기도를 했으면 나가서 남자를 찾아야지요. 청년부에 가던지, 성가대를 찾아가던지, 아니면 결혼상담소라도 찾아가야 남자를 만나지, 매일 구석에 모여 기도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라고 했답니다. 그럼요,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 그 앞에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찾을 때, 좋은 배필을 만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할 일을 할 때 일어납니다. 그 분의 역사는 마치 내가 불을 붙일 때 기름을 부어주는 것과 같고, 내가 앞으로 갈 때 뒤에서 바람을 불어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자씨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아주 작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 할 일을 했을 때, 하나님이 그 작은 씨로 말미암아 큰 나무가 되게 하시고, 공중에 나는 새들이 깃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막4:31~32).
잠언 21장 31절의 말씀도 있습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1). 사람이 할 일은 마병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하시겠지’ 하고 손 놓고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우사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셔 들이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성화(聖畵)에서도 많이 봐서 알지만, 밖에서는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문고리도 없고, 열쇠구멍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안에서 문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그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물론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언제냐?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을 때입니다(눅18:27).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노력해도, 연구해도, 힘쓰고 애써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직접 하십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피하여 숨었을 때, 하나님은 까마귀를 들어 먹이셨습니다(왕상7:1~7).
하나님이 직접 하신 것입니다. 빌립을 번쩍 들어 올려 옮기신 일도 있습니다(행8:39). 산길에서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할 수 없지요? 그럴 때는 하나님이 물로 기름도 만드십니다. 그러나 항상 물 넣고 기도한다고 기름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할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나와 있냐고요? 물론 나와 있다마다요. 성경은 먼저 열심히 하라고 했고요(롬12:11, 계3:19), 둘째, 부지런히 하라고 했습니다(잠27:23, 욥8:5). 셋째, 충성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눅16:10, 고전4:2). 넷째, 성실히 하라고 했습니다(잠28:18). 다섯째, 정직하게 하라고 했습니다(잠11:6, 욥8:6). 이것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 되는 성공의 키(key)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로 이 세상에는 노동의 수고가 있게 되었습니다. 수고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잠언 24장의 말씀처럼 포도원에 가시덤불이 가득하고 잡초가 무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잡초를 제거하고, 무너진 담도 다시 쌓을 때 포도원에 포도가 가득하게 됩니다.
자식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부모가 모든 것을 다해주지는 않습니다. 자식이 할 건 하도록 교육하고 지시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시지만,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할 건 하도록 하십니다. 사람이 할 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우리가 한 것 이상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기도만 하고 앉아 있지 말고,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세요. 그러면 구하는 것을 얻게 되고, 찾는 것을 찾게 되고, 두드린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할렐루야!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불 꺼진 항구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