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659호 목차 › 교단소식

현대판 선악과를 따 먹을 것인가?

659호 · 2012-10-12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받지만, 축복에는 조건이 있다. 총회장 목사님은 지난 3일, 예수중심아카데미(J.C.Academy)에 참석한 젊은이들에게 그 조건에 대해 상세히 가르치셨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콩을 심어야 콩이 나듯, 물질을 심어야 물질이 난다. 단언컨대 축복은 십일조 제단 위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여러분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푼돈을 털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이 복 받기를 원한다. 분명히 말라기 3장 10절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다.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십일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십일조가 율법의 잔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목사들은 십일조 내라는 말을 잘 못한다. 왜냐? 돈 내라고 하면 다들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애들이 공부하라는 소리를 싫어한다고 공부하라고 못하는 부모와 같다.

그것이 사랑인가? 아니다.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잘 된다. 내가 그런 심정으로 이 설교를 하는 것이다. 아직 학생이고, 아직 사회 초년생들인 여러분이 듣기에 다소 버거울 수 있지만, 제대로 가르쳐서 성공시키고, 풍요롭게 살게 하고픈 마음에서 말한다. 심어야 난다(갈6:7).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둔다(고후9:6).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제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는 물질이 필요하다. 돈이 많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사람의 노력으로도 어느 정도의 돈은 벌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더하기(+)인생이라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대로 가는 자는 더하기(+)인생을 능가하는 곱하기(×)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것이 곧 십일조와 헌물이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대해 시험을 해보라고까지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을 시험하면 누구든지 다 죽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불뱀에 물려서 죽었다(고전10:9). 그런데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면 어떤 복을 받는지 시험하라고 하셨다.

이는 십일조를 하면 약속이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100%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히6:17). 어떤 복이냐? 황충이 없어 우리 삶에 소산이 멸하지 않게 되며, 우리 밭, 우리 삶에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이다(말3:11~12). 다 잘 된다는 것이다. 하는 것마다 잘 되고,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동일하다.

나는 전무후무한 전대와 칼을 가지고 목회를 하겠다는 기도를 늘 한다. 그러나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심어야 나는 법칙에 목사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나는 많이 심는다. 곧 여러분은 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도 동일하다. 용돈 받은 것에 1/10, 아르바이트 한 것에 1/10을 드려라.

월급을 타거든 ‘나중에 드리지’ 하지 말고 먼저 1/10을 하나님께 드려라. 월급을 보면 국가에 세금도 공제된 상태로 나오지 않은가. 하나님께 드리는 세금이다. 국가에 세금을 당연히 내듯, 십일조는 너무 당연한 것이다. 자랑할 일이 아니다. 내가 처음 예수를 믿고 상당한 금액의 십일조를 당좌수표로 내고는 자랑한 적이 있다. 그 때 누군가 나에게 ‘당연한 것인데 왜 그러냐?’고 했었다. 그렇다. 십일조는 믿는 자의 당연한 의무다.

요즘 연금이나 적금에 관심이 많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은행을 믿고, 보험사를 믿고 돈을 맡긴다. 몇 푼의 이자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은행도 갑자기 문 닫을 수 있고, 이자율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다. 그곳은 좀과 동록이 해하지 않고, 도적도 없다. 30배, 60배, 100배의 이자를 준다. 그곳에 심어라. 그곳에 저축하라.

그래서 많이 거둬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와 나누는 (÷)삶을 살아라.”

십일조는 현대판 선악과다. 그것을 따 먹을 것인가, 말씀대로 따 먹지 않을 것인가는 각자가 결정할 일이다. 젊은이들이여! 어떻게 할 것인가?

659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Q & A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