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지금도 비슷하지만 목회 초기에 누가 나에게 목회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늘 먹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나는 어려서부터 뱃골이 적어 많이 먹지 못했다 하신다.
심방가면 성도님들이 성심껏 준비한 음식을 마음껏 먹어주지 못해 늘 죄송했다. 어느 날 집에서 어머님께 ‘나는 성도들이 음식점에 가면 음식을 너무 많이 시켜서 힘이 들고, 제발 좀 많이 시키지 말라고 말리느라고 더 힘들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앞으론 절대 그러지 말라하시면서 너 때문에 고기 좀 실컷 먹어 보려했던 사람이 너 때문에 못 먹어 마음 상할 수 있으니까 후로는 더 시키거든 절대 말리지 말라하셨다.
더 시키면 더 가져오게 해서 실컷 먹게 하고 남으면 싸가지고 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셨다. 요즘은 더 시키던지 몰래 화장실 가는척하고 가서 더 주문하고 오던지 상관 안하고 실컷 먹다 남으면 싸가지고 가라한다. 그랬더니 모두가 편하다.
십 수 년 전에 집을 이사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방배동 떠나면 이제 늘그막에 친구도 없어 힘드니 방배동 안에서 집을 찾으라신다. 마침 어머니 친언니가 사시는 맞은편 집이 나와 말씀드리고 모시고 가서 보여드렸더니 너무 좋아 하셔서 그 다음날 계약하러 나가려는데, 그 이모 큰아들이 전화해서 그 집 아주머니가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그 집을 사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너 어디 가서 죽은 사람 없는 집 있으면 그 집 사와 봐.”라고 하신다.
어머니와 차라도 함께 마시려면 언제나 똑같은 레퍼토리의 반복이시다. 그래서 우리 딸이 할머니에게 붙여놓은 별명이 할머니는 리피터기(Repeater)다.
일곱 자녀를 두셨으니 키우면서 얼마나 복잡한 일들이 많았을까? 생각만 해도 두 자녀를 키운 내게는 위대해 보이실 뿐이다. 그런데 그 리피터기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 있다. 자녀들을 변호하는 내용들이다. 자식이 공부를 안 한 것이 아니고 사정에 의해서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개 딸은 집안일 하느라 못했고, 아무개 아들은 농사일 돕느라고 못했고, 아무개 아들은 어려서 볼거리 앓느라고 못했고 등등이다. 늘 자식 편에 서서 또 다른 자식들에게 좋은 쪽으로만 변호하신다. 평생 들어도 언제나 변함없이 자녀들의 좋은 쪽만 말씀하시는 리피터기다.
제법 괜찮게 사시는 문화 유씨 학자 집에 막내딸로 태어나셨는데, 불행하게도 외할머니가 어머니 나시고 바로 돌아가셨단다. 그 후 외할아버지가 두 번 재혼하는 동안 말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셨단다. 물론 학교는 문턱에도 못 가보셨고 정신대에 끌려갈까봐 아버님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고 17살에 시집을 오셨단다. 와보니 참으로 가난한 소작인 가정의 맏며느리더란다.
시집 오셔서 여덟 자녀 낳아서 딸 하나 실패하고 7남매 키우면서, 병석에 있는 시부모 모시면서 힘겨운 보릿고개와 전쟁을 넘으셨단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왜 그렇게 어려울 때 태어나셔서 그 험한 고생을 하고 사셨어요?” 하면, “누가 아니래니?” 하시며 웃으신다.
작년여름에 느닷없이 직장암이시란다, 항문으로 피를 한 달 동안이나 쏟으시면서도 자식들 걱정한다고 혼자 끙끙 앓으시다가 어쩔 수 없이 말씀하셔서 진단받은 결과다. 치료를 시작하셨고 목사님은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단에서 말씀하셨다. 성도님들이 놀라서 여기저기서 암에 좋다는 약이나 먹거리들을 보내오셨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병원에서 하는 방사선 치료도 거뜬히 받으시고 약도 잘 드시더니, 성도님들이 보내주신 것들을 성의가 고맙다고 하나도 버리지 말라시며 몽땅 다 드셨다. 병원에서 그런 거 절대 잡수시지 말라 해도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6개월 뒤 결과는 완치였다.
치료해서 암의 부위가 적어지면 수술 하자던 의사가 깜짝 놀랐다. 더욱 나를 즐겁게 한 것은 경로당에 한 번도 안가시더니 완치판정 받으시고는 바로 경로당에 가셔서 친구들 물음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깨끗하게 고치셨다’고 하셨단다. 자식들과 교인들이 기도해서 이렇게 낳았다고 자랑하셨다니 암이라는 큰 산이 어머니의 믿음을 많이 자라게 하신 것이다.
이젠 87세.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 천국으로 훌쩍 가버리시겠지. 작년 병이 나셨을 때, ‘어머니를 보내드릴 때가 됐나’하고 얼마나 마음이 서글펐는지 모른다. 가슴이 아렸었다. 얼마나 더 계실지 모르겠으나 지금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할 뿐이다. 비록 리피터기처럼 하신 말씀 100번을 더하시더라도.
이시대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