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치유자, 예수
요즘 문화계에 화두는 ‘힐링(Healing)’, 곧 치유다. 현대인들이 삭막한 경쟁사회 속에 숨겨 두었던 영·혼·육의 회복과 치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서점가에는 힐링에 관한 도서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만큼 영·혼·육의 아픔을 녹이는 치유자는 없다. 귀신을 쫓아내며 육체의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심은 물론이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영혼까지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상처에 대한 기계적 치료가 아닌 병든 자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섬세하게 어루만지셨다.
예수님께 나왔던 나병환자의 치유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나병환자, 즉 문둥병자는 정상인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면 미리 알고 피할 수 있도록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다. “나는 부정한 놈입니다!”라는 말을 자신의 입으로 끊임없이 소리치는 비참함은 과연 어떠했겠는가? 게다가 사람들은 나병 환자의 잔혹한 모습이 그의 죄 때문이라고 여겼고 언제나 혐오 가득한 눈초리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병자를 고친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용기를 내어 그분께 나아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부정하다는 외침이 아닌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할 수 있나이다”(막1:40)라는 믿음의 간구를 드렸다.
이때 예수님은 그냥 말로만 그를 치유하지 않으셨다. 치유 선포에 앞서 그를 민망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셨는데, 이때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한 ‘민망히 여기사’라는 헬라어는 창자가 끊어지는 주체할 수 없는 긍휼함을 담고 있다. 예수님은 그러한 지극한 사랑에 못 이겨 늘 외면당하며 살았던 그의 상한 마음까지 치유하시기 위해 일부러 율법을 깨고 손을 내밀어 그를 만져주신 것이다.
그가 나병에 걸린 이후, 누군가 자신을 극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타인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것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나병은 물론이요 일그러졌던 영혼까지 완벽하게 치유 받았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예수님의 철저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치유를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한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의 고통을 평가하고 비난할 권한이 없다. 오히려 그 안에 숨겨진 아픔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예수의 사랑과 긍휼로 그들의 상처를 감싸야 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하나님께 아뢰는 용감함이 필요하다.
영적 나병환자처럼 자신의 영혼이 잘려 나가는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쌓여 가는 마음의 상처는 언젠가 쓴 뿌리가 되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벽을 만들고 자신과 타인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성찰과 용기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더 할 수 없는 위로와 사랑의 손길로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일으키실 것이다.
하인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