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사회는 아름답다
작고하신 내 믿음의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 목사, 이 목사가 가장 챙기고 아껴할 사람, 가장 귀히 여길 사람은 바로 이 목사의 차를 운전해주는 사람들이야.” 어머니의 말씀은 지당했다. 운전은 곧 나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고, 그 분들이 있어 내가 편히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그러셨다.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면서 가마를 멘 사람의 고통은 모른다.” 가마꾼의 수고가 있기에 자신이 가마를 타고 편히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마꾼이 없으면 어찌 하랴. 먼 거리를 터벅터벅 걷는 수밖에. 그러므로 가마꾼을 하대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그들을 대우해주고, 배려해줘야 한다. 그래야 언제나 가마를 편히 탈 수 있게 된다.
세상은 어쩌면 가마를 탄 사람과 가마꾼으로 이분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배려는 그리 흔치 않은 듯하다. 정치인들은 국민 덕에 정치한다. 그러나 감사를 모른다. 국민을 가마꾼 취급한다. 그러나 배가 아무리 커도 물이 한 번 크게 출렁이면 뒤집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업인들도 그렇다. 사원들의 희생이 있어 기업이 이익을 낸다. 그러므로 사원들에게 더욱 각별해야 하고, 그들의 형편을 살펴야 한다. 가마꾼이 가마를 잘못 몰면 가마 탄 사람이 고생하고, 더는 바닥에 나뒹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은 없다. 세상은 서로 도와야 살 수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하나가 망하면 같이 망한다는 공멸을 뜻한다. 가마 탄 사람과 가마꾼은 입술과 이빨 사이다. 그러므로 가마 탔을 때 베풀어라.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아랫사람을 배려해라. 그래야 공생하고 상생한다. 그러면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