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65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이기려면 절제하라 (고전9:24~27)

650호 · 2012-08-10

지금 영국 런던에서는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각 종목의 선수들이 각자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과 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선전 속에 매일 낭보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사격과 양궁, 수영, 펜싱 등등 여러 부문에서 메달 소식이 속속 들어오고 있어,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얼음냉수를 마시는 듯합니다.

올림픽은 참가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어느 나라가 금메달이 몇 개고, 은메달이 몇 개인지는 왜 헤아립니까? 순위는 왜 매긴답니까? 경기는 겨루기일진대, 겨루는 것은 이기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누가 센지, 누가 빠른지, 누가 세밀한지, 누가 기술이 뛰어난지 겨루는 것 아닙니까?

지금 선수는 물론이고, 선수를 지원하고 후원하고 지지하는 국민을 비롯한 모든 자들이 밤새우며 응원하는 것은 대한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4년 동안 그렇게 힘든 훈련을 한 것은 올림픽에서 최고가 되려고, 이기려고 그런 것입니다. 이겨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획득하려고 그 혹독한 훈련을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 고린도에서는 2년마다 지금의 올림픽과 유사한 경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경기에서 우승하면 상금은 없고 솔잎으로 만든 면류관을 우승자의 머리에 씌워주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며칠이면 시들 솔잎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고 믿는 자들이 믿음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죄와 싸워 이기고, 악과 싸워 이기고, 세상과 싸워 이기라고 우리를 독촉하고 독려한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면류관은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아니할 것이기에 더욱 믿음의 경기에서 이기라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배드민턴 선수들이 지기 위한 경기를 하다가 실격되고 징계를 받는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대진을 받기 위해 일부러 지는 게임을 한 것입니다. 마땅히 징계 받아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들을 우롱한 것이고, 올림픽을 관전하는 전 세계인들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요,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한 것이 됩니다. 제가 우리 손주를 중국에 보내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네가 가서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를 보낸 이 할아버지를 무시한 것이다.”라고요. 하물며 믿음의 경주에서 대충대충, 이기든지 말든지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무시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믿음의 경주를 시작한 자입니다. 그는 세상의 썩어질 것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을 위해 태에서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았고(창25:26), 그것이 안 되자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취하고는 도망쳤으며(창27), 그 도망치던 중에 하나님과 대결할 때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싸워 결국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겨뤄 이긴 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창32:28).

우리도 이래야 합니다. 마귀와 싸워서 이기고, 시험에서 이기고, 세상 유혹에서 이기고, 악과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상을 받기 위해서, 면류관이요, 열 고을의 왕권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해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가 필요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고전9:25). 이 말씀을 한 바울은 육에 대한 성품과 본능, 욕망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도 극기하고 절제하는데 하물며 영적인 승리를 위해서, 하늘의 면류관이 절제 없이 그냥 얻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절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못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목적을 위해 참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곧 절제란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이 체중관리를 위해 먹는 것을 참는 것, 외출을 삼가는 것, 잠을 줄이는 것, 데이트도 미루는 것…. 이런 것이 절제입니다.

저는 성공자들의 공통분모가 적극성과 절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성공을 위한 두 날개입니다. 만일 적극성만 가진다면 그것은 화로 없는 불이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아 무모할 때가 많고, 사고치기 쉽습니다. 또 절제만 가지고 있다면 사고는 나지 않겠지만, 일에 진전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달음질과 절제를 언급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봅시다. 가룟 유다를 선두로 많은 무리가 검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와 함께 있던 베드로가 검을 꺼내어 대제사장의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검을 도로 넣으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마26:53~54). 예수님은 충분히 열 두 영의 천사를 부를 수 있었지만, 당신의 목적, 곧 우리를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자신을 절제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썩지 않을 면류관을 위해서 절제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절제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음은 인정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절제하지 못하여 인류를 죄에 몰아넣었고, 아브라함도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 하갈을 취하여 인류사에 분쟁을 낳았으며, 모세도 화를 절제하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다가 그토록 원하던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했고(민20:12), 다윗도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한 연유로 자식이 죽고, 집안에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또 천하장사 삼손도 여색을 절제하지 못하여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여러분, 더 놀고 싶으시죠? 더 자고 싶으시죠? 더 먹고 싶고, 더 쉬고 싶으시죠?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서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더 놀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교회로 발길을 옮겨야 하고,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기도해야 합니다. 더 쉬고 싶은 것을 참고 전도해야 하고, 성경을 읽어야 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날, 금메달을 딸 수 있습니다.

제가 눈이 터져가면서도 복음을 들고 동분서주하는 것은 바로 그 날의 상을 위해서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그 날 열 고을의 왕이 되기 위해서, 그 날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는 권세를 잡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절제는 필수입니다. 다 자고, 다 먹고, 다 놀고 어떻게 성공하겠습니까? 성공한 자들에게 물어보세요. 목적을 위해 무엇을 잘라내고, 무엇을 절제했는지 말입니다. 더욱이 신앙의 성공을 위해서는 더욱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23절에 9가지 열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절제를 강조했고, 베드로후서 1장 5절 이하에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승리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목적에 저해되는 모든 것을 절제하십시오. 육신을 벗는 날 상을 받고 싶으십니까? 세상의 것들을 절제하십시오. 면류관 받기를 원하십니까?

더욱 절제하십시오. 할렐루야!

적극성과 절제는

성공자의 필수조건이다

절제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며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65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Q & A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교단소식
교육부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