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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네 생각의 한계를 깨뜨려라 (왕하4:1~7)

648호 · 2012-07-27

상대성이론으로 현대 물리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친 아인슈타인도 자기 머리의 5%밖에는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 세기에 하나 날까 말까한 천재가 자기 머리의 5%밖에 쓰지 않았다면, 만일 인간이 그 머리를 100% 다 쓴다고 가정할 때, 인간이 얼마나 큰일을 이룰 수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2, 30년 전, 텔레비전이나 극장에서 보았던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지금은 거의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말만 해도 움직이는 자동차, 들고 다니는 전화기, 비행기 속도에 버금가는 기차 등등…. 예, 사람은 능히 이런 것들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던 때에 개는 개처럼 창조하시고, 소는 소처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처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5~26).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육체를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얼굴 생김이 닮고, 손발이 닮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知)·정(情)·의(義)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知)적 능력을 닮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 그분의 능력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전지전능하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렘32:17).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에게는 사실 불가능이 없고, 불가능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많습니다. 어쩌면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폐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우리에게 불가능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우리 스스로 한계를 긋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한계를 그어 놓고 그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우물을 뛰어넘으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 ‘이건 안 돼.’,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잠재된 무한한 능력이 사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의 한계가 능력의 한계입니다. 생각이 ‘안 된다’라고 하는 순간, 두뇌도, 몸도 거기서 딱 멈추고 마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으로 인하여 풍전등화 격이 된 자국과 자국민을 위해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아가 사실을 고하라고 하자, 에스더의 생각은 우선 ‘안 된다’였습니다.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에4:11). 생각이 그러니 능력이 발휘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계속 권면함으로 에스더가 그 생각을 깨버리고 3일 금식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왕 앞에 나가더니 일을 해결하게 됩니다. 생각의 한계를 깨버리면 길이 보이고, 길이 열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선지자의 생도가 죽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신학생 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으면서 빚을 남겨두고 간 모양입니다. 그러니 힘없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이것을 갚을 능력이 있어야지요. 돈을 못 받은 채주들이 그럼 아들이라도 데리고 가서 종을 삼겠다고 난리를 치니 생도의 아내는 남편 죽은 것은 둘째고 아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그 소식을 듣고는 그 집에 찾아갔습니다. 가서는 무엇이 있는지 물었더니 사정도 딱하지, 딱 한 병의 기름밖에 없는 겁니다. 하여 엘리사는 그 모자에게 다른 집에 가서 그릇을 빌리라고 합니다. 조금이 아니라 빌릴 수 있을 만큼 많이 말입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그 그릇들에 기름을 따르니 계속 나옵니다. 빌린 그릇에 기름을 다 따르고 나서야 기름이 떨어집니다. 그것으로 그 모자는 빚을 갚고 가난에서 벗어났습니다.

여러분, 이 모자가 빌린 그릇의 수가 바로 생각의 한계입니다. 엘리사가 그릇의 숫자만큼만 기름을 부었듯이, 우리 생각의 크기에 따라 능력도 비례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종지만하면 종지만한 능력밖에 안 나옵니다. 비가 하늘에서 쏟아져도 그릇 이상은 받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큰 드럼통으로는 많은 비를 받을 수 있듯이 생각이 크면 큰 내일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이는 입을 크게 벌리라는 뜻이고, 생각의 한계를 깨뜨리고 큰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라는 뜻입니다. 벌린 만큼 줄 것이고, 생각한 만큼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생각의 한계를 깨뜨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현실이라는 족쇄에 묶여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하지 못합니까? 그 생각의 한계를 깨뜨릴 때 찬란한 미래가 박수를 치며 달려올 것이고, 현실이라는 족쇄를 풀고 큰 미래를 꿈꿀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끔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하셨을까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광야에서 메추라기 떼를 보내사 먹게 하신 하나님, 바위에서 샘물이 나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그 하나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건만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답답해서 가슴을 치시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인간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처럼, 멀리 있어도 통화를 가능하게 했던 전화의 발명가 벨처럼, 여름에도 얼음을 사용하게 한 냉장고의 아버지 퍼킨스처럼, 우리도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하는데 돈 들지 않습니다. 상상하는데 학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제한입니다. 그러니 입을 크게 벌리세요. 생각을 크게 하세요. 제가 철산 예루살렘 교회에서 오늘의 예수중심교회로 교회명을 변경한 것은 생각의 틀을 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그 생각대로 이제는 세계 70여 개국을 예수중심으로 아우르는 교회가 되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로 유업을 잇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불러 세우고는 하늘의 뭇별을 보게 함으로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셨고,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말했을 때,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며 생각의 한계를 긋자 천사는 마리아의 생각을 깨뜨리는 말을 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눅1:35).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곧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가 합당할지 모르지만, 요즘 휴대폰에 들어있는 유심칩(usim chip)만 바꾸면,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처럼, 내 무능함을 빼버리고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도 임하여 불가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창조주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제한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을 벗어버리고 입을 크게 벌리십시오. 하나님이 채우실 것이고, 하나님이 능력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로 올라가라

도토리 개수는 셀 수 있지만

도토리 안에 나무는 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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