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의 들보
얼마 전이었다. 가족과도 같은 가까운 지인이 오랜만에 소식이 온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 지인에게 오랜만에 갑자기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의도가 아닐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하였다. 뜬금없는 내 충고에 지인은 좋은 의도로 연락해온 친구와 서먹한 만남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이었다. 갑작스런 연락을 주의하라며 큰소리를 치던 내가 생각지도 않은 일을 당하게 되었다. 어느 날, 불쑥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지도 않고 광고 계약을 맺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 확인해보니 광고를 하겠다는 그 회사는 문제가 많은 곳이었다. 이제 와서 계약을 취소하려니 이만저만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지인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 지인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보러 조심하라고 하더니! 너는 왜 생판 남인데 확인도 안하고 계약을 하냐!”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남의 티를 지우라고 타박하는 외식하는 자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이 열두 명의 제자를 택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6:41~42).
그러니까 나는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외식하는 자였던 것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겠다고 기도하면서도 기도하는 마음과 나의 행동이 전혀 일치되지 못하고 있었다. 타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정죄하면서 나는 옳고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의 극치였음을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았다. 이번 말고도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과 조언을 가장한 채로 비판한 적은 없는지, 그 사람의 이유와 사정을 알기도 전에 정죄한 적은 없는지 나의 말과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가장 똑똑한 척, 내 생각이 정답인 듯 감 놔라 대추 놔라 했었던 나의 행동들은 정말 무수히 많았다.
혼자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기억나는 순간이 너무도 많다. 깨달은 이 순간 이후부터는 이래라 저래라 지적하고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삶을 살아야 될 것 같다. 누군가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그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겠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더 합당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설령 남의 허물이나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그것을 비난하기보다는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의 허물을 더욱 보듬고 위로해야겠다. 그것이 진정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참된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JeeA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