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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창12:1~4)

642호 · 2012-06-15

목회 27년 동안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치다보면 훈계할 때도 있고, 야단칠 때도 있고, 심하게는 때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의 반응이 사뭇 다름을 봅니다.

어떤 제자는 맞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니 그전보다 더욱 제게 다가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제자는 야단 좀 쳤다고 저를 피해 다니고, 서운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가 있습니다. 솔직히 그런 자에게는 저도 서운합니다. 다 저 잘 되라고 그런 건데 말입니다.

여러분, 까놓고 우리 얘기해봅시다. 제자와 스승이 불화하면 누가 손햅니까? 당연히 제자가 손햅니다. 사장과 사원이 불화하면요? 사원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지 못하면 어떻겠습니까?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데 말입니다. 간혹 하나님을 향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을 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느니,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맨날 인생이 곤두박질친다느니 하는 자들 말입니다. 그런 자들을 보면 지옥은 가기 싫어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삽니다. 그런 분들께 제가 단언하는데요, 여러분 그래서 좋을 거 없습니다. 하나님과 불화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당신만 미워서 기도 응답을 안 하는 거겠습니까? 당신이 주워온 자식이라서 맨날 낭떠러지로 밀겠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당신의 기도의 독이 아직 차지 않았거나, 당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았거나,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것일 뿐, 독생자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왜 당신에게 무관심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런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좀 섭섭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래도 하나님과 불화하면 안 됩니다. 다윗을 보겠습니다. 다윗에게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해서 얻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심히 앓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아들을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금식하며 무한정 땅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을 거둬갔습니다.

그 후 다윗의 행동에 주목해봅시다. 다윗은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는 궁으로 돌아와서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먹었습니다(삼하12:16~20). 분명히 다윗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섭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괜히 다윗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다윗은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4절에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다윗이 부족함 없이 다닌 것은 푸른 초장만 다녀서가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다녔지만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섭섭해 하면 참다운 신앙인이 아닙니다. 섭섭할 때마다 하나님에게서 한 발자국씩 멀어지다보면 나중에는 완전히 멀어집니다. 길 가다가 엄마에게 혼난 애들이 엄마와 떨어져서 고개 푹 숙이고 가는 걸 봤지요? 그거 안 좋은 거란 말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자기 행실 때문에도 아니고 하나님 섬기다가 사자굴에 던져졌어도 어디 하나님께 불평했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까? 더욱 하나님 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또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의 최고의 일언(一言)이 무엇입니까?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8). 이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불에서 능히 건지실 수 있는 분이지만, 그러지 아니하실지라도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이것입니다. 건져낼 능력이 없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능력이 되는데도 건져주지 않는다면 원망이 폭발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육체의 가시 때문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시를 거두어주지 않으셨습니다(고후12:7~ 11).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원해졌나요? No,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응답을 듣지 못했지만 더욱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과감히 목숨도 버렸습니다.

저는 ‘~ 때문에 사랑’과 ‘~불구하고의 사랑’에 대해 가끔 생각합니다. 사실 ‘~ 때문에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거래지요. 진정한 사랑은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고난을 주셔도,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셔도, 혹 섭섭하게 하셔도 하나님과 화목해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참된 신앙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7~19).

두 번째, 또 다른 지혜로운 동행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사람과의 동행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잡고 갈 때, 그의 조카인 롯도 데리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 때 롯도 더불어 복을 받았습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창13:5). 그랬는데 롯이 아브라함과 갈라서자 롯의 복이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나오미의 두 며느리도 그렇습니다. 과부가 된 두 며느리 중 큰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떠나갔지만, 둘째 며느리인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룻1:16). 그러더니 룻은 보아스라는 재벌의 아내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복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를 좇은 엘리사도 봅시다. 엘리야가 세 번이나 가라 가라 해도 좇더니만, 그가 원하는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을 받아 선지자의 길을 갔습니다(왕하2).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좇으면 복을 얻지만, 그렇지 않으면 요나가 탄 배에 함께 탄 자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애꿎게 고난을 당한 것처럼 화를 당하고, 고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떡 치는 자 옆에 가면 떡을 얻어먹지만, 장작 쪼개는 자 옆에 가면 장작이 눈에 튀어 눈을 다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와 함께 해야 할까요? 오늘 당신이 누구와 동행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와 동행하고 있는지, 다분히 세상적인 사람과 동행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므로 친구의 신앙상태가 당신의 신앙상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신약의 잠언이라 할 수 있는 야고보서 5장 13절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이 말씀은 고난을 당하든, 즐거운 일이 있든지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기에, 그 분의 뜻을 헤아릴 수 없기에 그 분께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그 분 곁에서 멀어지지 말고, 더욱 그 분 가까이 가라는 말씀입니다.

품안으로 파고드는 자식이 더욱 예쁜 것이 부모 마음이듯, 하나님 가까이 동행하는 당신을 하나님이 더욱 사랑하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과 동행하십시오. 그를 좇아가면 결국 하나님의 곁으로 가게 되어 그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할렐루야!

~때문에 사랑이 아니라

~불구하고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떡 치는 자 옆에 가면 떡을 먹고

장작 쪼개는 자 옆에 가면 눈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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