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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호 목차 › 붕우칼럼

나는 예수님의 통역관

642호 · 2012-06-15

나는 외국어에 능하지 않다. 그래서 해외집회 때 통역관을 쓴다. 그들은 내 말을 통역하고, 내 설교를 통역한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앵무새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대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역하면서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말만 흉내 내는 앵무새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내 말만 통역할 것이 아니라 그 신앙이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권 통역관인 슬라바 목사나 남미권 통역관인 이현숙 선교사는 그런 면에서 아주 자랑스러운 통역관이요 동역자다. 그들은 통역도 잘 하고 열정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그들의 입을 통해 통역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생활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앙은 뜨겁고 살아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이 더욱 은혜롭다. 앵무새는 말은 비슷하게 하지만 감정이 없다. 왜? 말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 통역하면 앵무새 꼴 나는 것이다. 말만 하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의 통역관이다. 그렇기에 그분의 신앙을 닮으려고 애쓰고 노력한다. 내가 전하는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려 몸부림친다. 그래서 내가 전하는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것이라 믿는다. 말만 옮기는 앵무새가 아니라 예수님의 신앙과 믿음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몸부림치기 때문에 영·혼·육을 찌르는 살아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도 동일하다. 믿음을 권면하는 글을 쓰면서 정작 빈 껍질 신앙이라면, 바리새인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 신앙이 내 것이 될 때, 글을 읽는 자들이 식었던 믿음이 살아나고, 변화되고, 깨닫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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