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삼상16:1~13)
허름한 차림의 노부부가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하버드의 정문을 막 들어서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정문에 서 있던 경비가 그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여긴 왜 들어가려고 합니까?” 경비의 물음에 노부부는 “총장님을 좀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경비가 코웃음을 치며 “아니, 총장님이 당신 옆집 사람이요? 총장님 같이 높은 분이 당신들 만날 시간 어디 있겠소?” 하며 노부부를 정문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경비의 태도가 불쾌했지만, 노부부는 다시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만한 대학을 설립하려면 돈이 얼마나 듭니까?” 그러자 경비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댁들이 그건 왜 묻는 거요? 어서 나가기나 해요.”라며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래서 노부부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사실 이들은 스탠포드 부부로, 금광과 철도업을 가진 엄청난 재벌이었으며, 캘리포니아 주지사, 상원의원을 지낸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15살에 장티푸스로 죽자 전 재산을 교육 사업에 헌납하기로 결정하고 하버드 대학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경비에게 쫓겨난 이들 부부는 5년 후 직접 대학을 설립했는데, 그 대학이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입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하버드 대학은 그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아쉬워하며 하버드 정문에 이런 문구를 써 붙였다고 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조선시대 이야기도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황희 정승의 일화입니다. 황희 정승이 누추한 옷을 입고 길을 걷다가 시장기를 느낄 무렵, 잔칫집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술 얻어먹어볼까 하여 그 집에 들어서니 하인들이 대문부터 막았습니다. 정승은 배가 고파 그러니 요기나 하자고 해도 하인들은 막무가내로 정승을 막았습니다.
이후 그 집에서 다시 잔치가 열렸을 때, 정승은 사모관대를 갖춰 입고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도 버선발로 달려 나와 그를 맞이하고는 산해진미를 차려 내왔습니다. 그러자 정승은 잘 차려진 음식을 먹지 않고 음식을 옷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이를 보고 주인이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묻자 정승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전에 허름한 옷으로 찾아왔을 때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오늘은 귀한 대접을 하는구나. 모두 이 옷 덕택이니 음식을 먹을 자격은 이 옷에게 있느니라.”
이 두 예화를 읽고 당신은 혹 찔림이 없습니까? 허름한 옷을 입었다고, 생김새가 조금 어눌하다고 그들을 멸시하고, 차별한 적은 없습니까? 이런 자에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요, 그리 행한 자는 범법자’라고요.
야고보서 2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2:1~9).
인간사에는 부자나 권력 있는 자에게 아부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배역하는 것이므로 분명히 죄가 됩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면 안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수박의 겉만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수박의 겉만 봐서는 속에 그렇게 달고 시원한 육즙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예전에 미국산 사과가 들어왔는데 새빨간 것이 얼마나 예쁜지 맛이 기가 막힐 것 같아서 냉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푸석푸석하니 영 맛이 없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의 학벌, 가문, 외모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사울을 왕위에서 폐하신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 원하셔서 선지자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냅니다.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장자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의 마음이 동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도 용모와 신장이 뛰어났는데 그에 버금가게 잘 생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결국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중 가장 어린 막내 다윗을 택하사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주님도 이 땅에 오셔서 제자를 택하실 때, 외모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학벌이니 가문을 보지 않으시고, 그들의 내면을 보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외면적으로 내세울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생이 있는가 하면, 과부에,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자까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은 그들의 외모, 즉 외적인 것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보셨기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택하신 것도 외모를 보신 것이 아니기에 가능했습니다. 외적으로 제가 뭐 내놓을 것이 있습니까? 다만 저의 열정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보고 택하신 것입니다.
본시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아야 합니다. 뚝배기가 멋지면 뭐합니까? 그렇다고 된장찌개가 맛나고, 김치찌개가 맛납니까? 아닙니다. 장이 맛있어야 하고, 김치가 맛있어야 하는 겁니다.
세계 굴지의 S그룹은 의외로 명문대 출신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봤더니 그 기업 창업주의 정신이 학벌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상과 마음이 있는지, 어떤 생각의 소유자인지 면접을 보고 뽑아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분은 성경은 몰랐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됩니다.
아내나 며느리를 맞이하십니까? 얼굴만 보지 마십시오. 옛 노래에도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너도나도 성형으로 치닫는다 해도 여자가 예쁜 게 다는 아닙니다. 마음에 사랑이 있는 자, 인내할 줄 아는 여자, 믿음이 좋은 여자여야 합니다.
또 남편감이나 사위를 고를 때 스펙이 좋다고 고르면 안 됩니다. 내 딸을, 나를 사랑해줄 줄 아는 진실한 자여야 합니다. 직원을 고를 때도 똑똑한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을 뽑아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사람의 내면을 볼 줄 아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 않고, 사기 당하지 않게 됩니다. 사기꾼들의 술수 중의 하나가 바로 겉을 멋지게 꾸미는 것 아닙니까? 어느 대학 나왔고, 누구와 잘 알고 있다고 하고, 사무실도 끝내주게 만들어놓는 것이 사기꾼들의 수법 아닙니까?
여러분, 질그릇이라도 그 안에 보배가 담겨야 합니다. 실력이 있고, 기술과 재능이 있음은 물론이고, 내 안에 선이 가득하고, 진실 되며, 무엇보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 또한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인류를 품는 큰 사랑을 지니사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사53:2).
속은 악한 것으로, 더러운 것으로, 무능력으로 채워져 있으면서 겉만 번지르르 하다면 그것이이야 말로 주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질타하신 대로 ‘회칠한 무덤’이 아니겠습니까?
꽃이 피는 기름진 들판을 아무리 파도 황금의 광맥은 숨겨져 있지 않지만, 거친 황야(荒野)의 밑에서는 발견되는 법, 사람을 그 외관만으로 판단하지 맙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할렐루야!
외관을 중시하는 자는
내면이 무능할 수 있다
사과가 크면 무엇하나
맛이 좋아야 좋은 사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