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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영광의 직분을 주심에 감사하라 (고후3:6~9)

632호 · 2012-04-06

작년 말, 저는 기획실 디자인팀에게 임명장을 멋지게 다시 디자인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주는 임명장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므로 성도들이 액자에 넣어 자랑스럽게 벽에 걸어두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고 싶어 디자인을 멋지게 바꾸라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주는 장로 임명장을 국가에서 주는 장군 임명장보다 귀히 여겨 장군 임명장 위에 장로 임명장을 걸어둔 우리 성도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 세상이 주는 어떤 직분보다 영광된 것임을 잘 아는 성도입니다.

세상의 직분은 내 능력에 따라, 내 노력에 따라 얻을 수 있습니다. 고졸보다는 대졸이 높은 직분을 받을 가능성이 많고, 박사 학위쯤 가지고 있으면 직분에 상승이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학벌이나 이력으로 직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직분을 받기에 더욱 영광되다 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엡3:7). 하나님은 세상에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세상에 약한 자를 택하사,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귀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의 직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이는 곧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이요, 정죄의 법이요, 곧 사라질 것이었는데도 그의 영광이 너무 빛나 바라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의 직분, 곧 살리는 복음의 직분을 받은 자는 얼마나 영광되겠고, 얼마나 영화롭겠느냐는 말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에게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 만인제사장 시대를 사는 우리, 복음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은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 우리가 받은 교사요, 안내위원이요, 헌금위원이요, 성가대의 직분이 모세의 직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영광스럽고, 영화로운 직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곧 육의 눈으로 볼 때야 교회의 직분이 우습게 여겨지겠지요. 집사 되었다고, 권사나 장로 되었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권세를 누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되레 교회를 더 많이 가야하고, 더 일찍 가야하고, 더 낮아져 섬겨야 하니까요. 그러나 육의 눈이 아닌 영의 눈으로 보면 다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다시 부활할 것이라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붙들고 절대 안 된다고 말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예수님이 가시는 길, 예수님이 받은 직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저주스런 것이었고, 고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눈에조차도 그렇게 비쳤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보면 그 분이 담당하신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기쁨으로 직분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히12:2).

저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정말이지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목회를 하기 전, 젊은 재력가로서 잘 나가던 시절에는 모든 자들이 저를 추앙했습니다. 그러다 목사가 되고, 더욱이 이단 시비를 받는 등 핍박이 오자 혹시 제가 아는 체라도 할까봐 다들 저를 피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저는 분명히 실패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누가 뭐래도 제게 주신 직분에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족하고 허물 많은 제가 직분자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었고, 또 이 직분을 잘 수행하면 그네들은 모르는 그 날에 받을 면류관과 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롬8:18). 또한 저에게 직분을 맡기신 것은 저를 충성되이 여기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여러분에게 직분을 준 것은 오래 교회에 다녔다고 그냥 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충성되다 인정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집사 직분을 줄 만큼, 권사나 장로 직분을 줄 만큼, 교사나 성가대나 안내위원으로 세울 만큼 여러분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가요? 하나님이요, 예수님이요. 그런데 이 직분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그 귀하디귀한 장자권을 팔아먹은 것처럼 말입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은 삼십 냥이 뭐라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분을 버렸다고, 여러분이 직분에 소홀하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룟 유다 때문에 예수님의 행보가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 곧 맛디아에게 직분이 넘어갔음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나라가 생명의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대신하게 하실 것이며, 여러분의 교회가 영의 직분에 소홀하면 다른 교회에게 촛대가 넘어갈 것이며, 여러분이 복음의 일에 나태하면 다른 사람을 들어 하나님은 일을 계속 하실 것입니다.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행1:20).

제가 오래 전에 꾼 꿈입니다. 예수님과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너무 피곤해서 누우면서 이렇게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 너무 피곤해서 좀 쉴게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정색을 하시면서 뭐라고 하신 줄 압니까? “그래? 쉬어라. 너 아니면 사람이 없냐?” 그 말씀에 얼마나 놀랬는지 벌떡 일어났습니다.

꼭 내가 아니면 안 되서 예수님이 나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꼭 여러분이어야 해서 예수님이 일을 부탁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많습니다. 어차피 사람의 능이나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닐진대 예수님은 누구든 잡아 쓰시면 됩니다. 그러니 나에게 직분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충성되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요? 아니요, 나를 위해서요.

사사기 9장 8절에서 15절에 보면,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누군가를 왕을 삼으려고 합니다. 먼저 감람나무에게 왕이 되라 하니 감람나무가 말하길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왕이 되리오.”라고 했습니다.

다시 무화과나무에게 왕이 되라 하니, 그 왈, “나의 단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라고 했고, 포도나무에게 왕이 되라 했더니 그도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버릴 수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라 했더니 옳다구나 하고 “왕이 되겠노라.” 했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세상의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직분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게 맡겨진 직분의 가치와 귀중함을 우리 성도들이 깨달았으면 합니다. 감람나무면 어떻고, 무화과나무면 어떻습니까? 또 포도나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귀하고 덜 귀하고가 없습니다. 역할이 다를 뿐, 역할 분담이 있을 뿐입니다(고전12:27~31).

대통령에 출마한 자를 위해 일하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한 자리 줍디다. 우리 하나님을 위해 일한 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열심히 뛴 자에게 하나님도 한 자리 주십니다. 대통령이야 임기가 끝나면 그 한 자리도 끝나지만,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한 자리는 영원무궁할 것이니 어찌 우리의 직분이 영광스럽고, 영화롭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직분에 충성합시다.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내게 맡겨진 직분에 충성합시다. 나를 차꼬에 채워 그 분 앞에 복종시킵니다. 나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나를 낮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 날에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이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할렐루야!

종에게는 의지가 없다

오직 순종만이 있을 뿐이다

당신은 교회의 디딤돌인가

아니면 교회의 걸림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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