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은 살리고 무관심은 죽인다
문제가 있을 때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대개의 경우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는 것이 다반사다.
우리 교단은 과거 일취월장(日就月將)하며,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목회로, 사반세기(四半世紀)만에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금은 답보상태다. 지금 우리는 그 원인을 찾고, 처방해야 한다. 더는 늦출 수 없다. 하여 지난 19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 내 리셉션 홀에서 교회 직분자를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 날 총회장 목사님은 초심의 회복을 거듭 강조하셨다.
“오늘 아침 사우나를 갔다가 모기업의 회장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 하는 말이 서울 외곽에 큰 사찰이 있는데, 거기 신도가 5만 명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왜 그 사찰에 신도가 그렇게 많은가 했더니, 그 사찰의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목욕재계를 하고는 모든 신도의 신상명세서를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큰 소리로 복을 빌어준다고 합니다.
아침 먹는 7시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식사 후 산을 돌며 기도를 하고는 다시 신도들 상담을 해주고, 설법을 한 후에도 다시 신도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며 복을 빌어준다는 겁니다. 그러니 복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사찰로 꾸역꾸역 모여든다는 겁니다.
나는 그 회장의 말을 듣고는 통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저들도 저렇게 열심히 신도를 챙기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해서 말입니다. 우리 교회 초창기 때 나는 성도 50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나는 성도들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였습니다.
내 말은 이 교단이 관심과 사랑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교회는 커졌습니다. 그래서 작은 단위로 쪼개준 것이 구역이고, 조입니다. 그러니 구역장, 조장인 여러분이 예전에 내가 했던 그 일을 해줘야 합니다. 구역원들, 조원들의 신상명세서를 들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대소사를 챙기고, 그들의 위로자,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구역원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얼마나 세세히 챙깁니까? 여러분, 바야흐로 지금은 모바일 시대입니다. 그것을 활용하는 겁니다.
부산의 S교회는 바로 모바일을 통해 교회가 부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일 수요예배입니다. 꼭 내일 뵐게요.’,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오늘 딸이 초등학교 입학이지? 축하해.’ 이렇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해주니 마음이 정착되고, 교인들 간에 사랑이 움터 교회가 날로 부흥한다는 겁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 매일 심방은 할 수 없지만, 전화나 문자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2, 3일에 한 번 정도 구역원에게 간단한 안부를 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설마 구역원의 전화번호도 안 가지고 있는 구역장은 없지요? 여러분, 관심은 살리는 거고, 무관심은 죽이는 겁니다. 조그만 관심이 구역의 부흥, 교회의 부흥으로 직결되는 겁니다. 교회의 부흥은 양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저렇게 열심인데, 참 신(神)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이렇게 나태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 날의 상을 알지 않습니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그 가치를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 게으름을 벗어버리고, 맡겨진 직분에 충실합시다.”
전도는 구호가 아니다. 실천에 있다. New Start 역시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첫 마음으로 돌아갈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 교단은 철산리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도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단이 재도약할 수 있고, 내실이 다져질 때 세계를 예수중심으로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직분자들이 목사님의 말씀대로 내게 맡겨진 양 떼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질 때 교회는 다시 일어나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