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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물과 기름은 하나 될 수 없다 (고후6:11~18)

624호 · 2012-02-10

당신은 인생길을 누구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혹 그 사람과 동행함에 있어 늘 분쟁과 갈등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밝혀드리겠습니다.

단적으로 그것은 물과 기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물과 기름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섞으려고 노력해도 절대 혼합되지 않고 결국 분리되고 맙니다. 그런데 사람 사이에도 물과 기름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물과 기름 같은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첫째,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고후6:14), 둘째,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으며(고후6:14), 셋째,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고(고후6:15), 넷째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상관될 수 없으며(고후6:15), 다섯째로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 될 수 없다(고후6: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물과 기름은 하나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떡하라는 말씀이냐? 그런 자와는 애당초 멍에를 같이 메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업자든 배우자든 동지든 한 뜻을 가지고 한 목적을 향해 가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물과 기름 같은 존재라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따로국밥이 되고 마는 겁니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신앙적인 면입니다. 신명기 22장 10절에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와 나귀를 한 쟁기에 메어 끌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유대 율법에는 소와 나귀가 같은 멍에를 메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와 나귀는 몸체의 크기가 다르고 힘의 크기도 다르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몸체와 힘이 적은 나귀가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불신자와의 동업이나 결혼, 모사나 대업을 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자와 함께 하는 것은 소와 나귀가 함께 멍에를 메는 것과 같은 것이며, 이로 인해 나귀가 고통을 받는 것처럼 믿는 자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믿는 자를 나귀에 비유하느냐 하면 믿지 않는 자들은 거칠 것이 없는 반면, 우리 믿는 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에 비해서 해서는 안 되는 일, 삼가야하는 일, 절제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음행, 탐욕, 호색이나 거짓, 우상숭배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여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학벌이나 인물이나 가문만 보고 혹해서 결혼했다가 신앙마저 팔아버린 자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믿게 하면 되지요.” 했는데, 그게 쉬워야 말이죠.

신명기 7장 3~4절의 말씀입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믿지 않는 자와 결혼을 막는 이유는 고난과 핍박 때문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라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초대교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의 보편적인 규범입니다. 믿는 자는 의요, 빛이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된 자로 하나님의 성전인데 어찌 불법과 어두움과 사단인 벨리알과 우상과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조지 뮐러는 결혼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결혼이란 인생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충분한 기도 없이 성급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이 결정에 의해서 행복, 사역, 하나님을 위한 삶, 나아가 자신의 인생 자체가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조심스럽게 기도하면서 선택해야 한다. 외모나 나이, 경제력이나 학력이 결혼의 결정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먼저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오래 기다려야 하며, 둘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로 배우자가 될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조금도 의심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연이요, 학연이요, 혈연이라는 이유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리가 나고, 갈등이 있고, 분쟁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되는 꼴이 없는 겁니다. 제 신조 중에 하나가 ‘고름이 살 안 된다’는 겁니다. 고름은 아파도 짜내야 병을 키우지 않게 됩니다. 그거 방치하면 나중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꼴이 됩니다. 고름 같은 존재가 있거든 짜내십시오. 이미 상처가 깊어서 짜내는 것으로 안 되거든 과감히 수술로 잘라내십시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왜 마지막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까? 믿지 않은 자와 멍에를 같이 메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취한 천여 명의 이방 여인들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들여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한 유다 4대 왕인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산당과 아세라 상을 제하는 등 종교개혁을 단행하던 왕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셔서 나라를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견고해지자 그는 지속적으로 나라가 강성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그의 아들을 아합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켰습니다. 또한 정략결혼으로 아합과 동맹을 맺은 그는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는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다 아합은 전사하고, 자신은 겨우 목숨만 건지는 사태에 이르고 맙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호사밧에게 선견자 예후가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어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이스라엘 왕 아하시아와 공동으로 배를 만들어 다시스에서 오빌의 금을 수입하려고 했지만 그 배가 파선되고 맙니다. 왜요? 그 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가로되 왕이 아하시아와 교제하는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대하20:37).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야 대성하고 만사형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고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고, 어떻게 축복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는 동질성입니다.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질감이 없다면 갈라서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남미선교팀은 최고의 동역자요, 파트너입니다. 마음이 맞는 것은 물론이고, 척하면 삼천리고, 툭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린 줄 알 정도로 호흡도 척척 맞습니다. 그래서 대여섯 명이 거의 매달 있는 집회를 성공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겁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믿음의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의 동행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갈라섭니다.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로, 바나바는 마가를 동행하고 구브로로 말입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데 참고 동행했다면 그들은 대업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갈라서는 장면이 창세기 13장에 나옵니다. 내분이 잦아지자 내린 아브라함의 현명한 결단입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맞는 다윗을 택하여 구원의 역사를 쓰셨습니다(행13:22).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러지 마십시오. 여러분, 사랑은 정의입니다. 본성이 사랑이신 하나님도 신앙이 다른 자를 단호히 버리시는데, 우리가 사랑 운운하며 어둠과 하나 되고, 불법과 사귀고, 벨리알이나 우상과 조화를 이룬다면 이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동질성, 마음의 동질성이 있는 자와 동업도 하고, 정치도 논하고, 결혼도 하십시오. 그것이 소리 나지 않고 행복하게 잘 달릴 수 있는 최고의 비법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할렐루야!

마음이 맞으면 척하면 삼천리요

툭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다

고름이 살 안 된다

아파도 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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